靑春生き残りゲーム Seishun Ikinokori Game 청춘 살아남기 게임 |
정리되지 않은 채 책꽂이에 되는대로 마구 꽂혀있는 책들을 쳐다볼 때면
늘상 '저 책들을 언제 정리한담?' 하면서도 정작 정리는 하지 않고
이 책 저 책 꺼내서 뒤적거리면서 각각의 책에 담긴 추억에 빠져듭니다.
일정 분량의 사회과학 서적들을 마치 의무라도 되는 양 읽어야 했던 시절,
그 때의 이른바 '필독 의식화 도서목록' 전부보다도 감동이 더 컸던 책.
적어도 내게는 그랬던,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의 책.
지금은 절판된, 노랑색 겉표지의 한길사 간행 제3세계 문고 중의 하나,
사랑과 전쟁의 낮과 밤(Dias y noches de amor y de guerra).
사람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것은 선동적인 구호나 섬뜩한 칼날이 아니라
도리어 한 권의 책이 더 그렇다는 느낌을 제게 강렬하게 안겨주었던 책. |
1.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다. 책도 재미도 없고 따분하기만 했다. |
그렇게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어떻게 그다지도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런 '문체'를 구사하는 능력이 무척 부러웠던, 사랑과 전쟁의 낮과 밤.
지난해 이맘 때 이사하기 직전 수백권의 책들을 밖으로 '내보냈을' 때,
'내보내기' 전에 찢어내어 따로 두었던, 책 뒷표지 안쪽에 끄적거린 메모들.
책꽂이 어느 구석에서 봉투에 담겨져 꽂혀있는 메모 뭉치.
그 메모의 내용 그리고 당시의 필체에서도 추억을 더듬게 됩니다.
그 대부분이 독후감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같은 것도 보입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에게도 꿈은 있었다.」
「그저께 밤.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날짜는 적혀있지만, 그 시절 그 날, 왜 그런 글을 남겼는지 알 길 없고
그런 메모가 도대체 어떤 책을 읽고난 다음인지도 이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분위기의, 이런 메모도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 중의 하나. 붙임성.」
「우리들의 불가피한 사랑 속에 내재하는 행복의 이미지.」
아주 아주 오래 전「사랑하는, 나의, 오랜 친구」와의 '문답 메모'도 있었는데
지금은 당시의 상황이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그런 '문답'을 메모로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그저 재미있었습니다. ^^;;
① 왜 이렇게 늦었는가?
― ○○씨가 국수 먹고 가라고 간절한 권했고, 오다가 ○○와 ○○를 만났음.
② ○○의 부름에 왜 감히 떨떠름하다는 식으로 밖에 의사표현을 못했는가?
― 알 수 없는 여자의 목소리라서 그랬던 것 뿐, ○○인 줄 몰랐음.
③ 두개의 질문에 대해 정확한 해명을 못할 경우에 올지도 모르는 불행한 사태에 대해 너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 책임은 모두 ○○씨와 ○○에게 있음.
④ 성토한다. ○○○.
― 성토의 대상이 본인이라는 점에 대하여 억울함을 금할 길이 없음.
어떤 날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궁금해지는 '옛' 이름의 그들.
거꾸로 꽂혀있던 책이 보여서 바로 꽂아두고 메모를 한장 두장 찢어버립니다. |
2.
누군가가 문틈으로 봉투를 밀어넣었다.
3.
봉투 위에는 뭔가 이상한 말이 씌여져 있었다.
|
4.
봉투 안에는 초록색 알약이 들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약 한 알을 삼켰다.
그리운 날
― 최하림
포플러 나무들이 거꾸로 서 있는
강으로 가, 저문 햇빛 받으며
우리 강 볼까, 강 보며 웃을까
이렇게 연민들이 사무치게 번쩍이는 날은 |
시 한편과「시집 살 것」이라고 써둔 메모도 있지만 시집은 결국 사지 않은 듯. :) | |
5.
그는 마치 바람이 새나가는 풍선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순간적으로 그의 키는 엄지 손가락 여섯 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열화당에서 간행되었던 사진문고 10권을 모두 구입했던 적이 있습니다.
책 뒤에 인쇄된 가격을 보니 2,500원, 그러니까 열 권 모두 사는데 25,000원.
얼마 되지 않는 돈 같지만, 지금의 열화당 사진문고가 한 권에 12,000원이니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십여만원의 도서 구입을 한방에 지른 셈였지요.
그 10권의 사진문고 씨리즈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보이지 않아
책꽂이 여기 저기 살펴보니, 그 책만 혼자 따로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열화당 사진문고 9「듀안 마이클」1986년 5월 20일 초판 발행. 2,500원. | |
6.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더니, 그가 이제껏 본 어떤 여자보다 큰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절판된 사진집 듀안 마이클의 프랑스어판 표지 |
7.
가까이 올수록 그 여자는 더욱 커졌다. 이내 그녀는 그의 위에 와서 섰다. |
그런데 이 사진집은 1999년 저작권 문제로 절판되었기 때문에
국내출판사의 판본으로는 이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었습니다.
「우연한 만남」,「사후 영혼의 여행」,「사물의 기이함」그리고「장갑」등,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의 대표작이 수록된 이 사진집에는
15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연속사진(sequence photo) 작품인
「약을 한 알 드시고 후지산을 보십시오」도 수록되어 있는데요.
오른쪽의 사진 15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 |
8.
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키에 넋이 빠져 버렸다.
「약을 한 알 드시고 후지산을 보십시오」
「Take One and See Mt. Fujiyama」
「Prends-en une et vois le Fujiyama」
사진 각각의 번호 아래에 있는 설명은 듀안 마이클의 자필 설명(caption)입니다.
(국내 번역본에는 작가의 핸드라이팅으로 프랑스어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혹시 듀안 마이클의 사진을 좋아하시나요?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진을 이번에 처음 접하시나요? | |
9.
그러나 그녀가 자기 위로 앉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그의 흥분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엄청나게 큰 엉덩이가 그의 위로 덮쳐 내리는 사이에
그는 도망치려고 허둥댔지만 도무지 기력이 나질 않았다.
그의 연약한 다리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
저는 사진에 대해서 그리고 사진가에 대해서 문외한이긴 합니다만
그의 사진집을 접한 이후부터는 누군가와 사진에 대하여 이야기 나눌 때면
저는「듀안 마이클의 사진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사진을 좋아하시나요? | |
10.
엄청나게 큰 엉덩이가 그의 위로 덮쳐 내리는 사이에 그는 도망치려고 허둥댔지만 도무지 기력이 나질 않았다.
그의 연약한 다리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흥분에 휩싸였다. 어마어마한 음부는 점점 더 가까이 덮쳐 내려왔다. | 따분함. 알약. 변신(?). 그녀의 등장. 넋이 빠짐. 흥분. 그러나 곧바로 두려움.
도망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무기력. 그리고 다시 흥분에 휩싸임.
어마어마한 음부는 점점 더 가까이 덮쳐 내려왔다. |
차라리 싸구려 포르노 사진이었다면 그냥 지나쳐 버렸을텐데.
'핀트(focus)가 맞지 않군' 하고는 쉽게 지나쳐 버렸을텐데.
그는 흥분에 휩싸였다. 어마어마한 음부는 점점 더 가까이 덮쳐 내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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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는 흥분에 휩싸였다. 어마어마한 음부는 점점 더 가까이 덮쳐 내려왔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잊혀지지 않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느낌은 떠올릴 때 마다 가슴이 아려오는 아련한 것일 수도 있으며
기회만 된다면 또 한번 느끼고 싶은 행복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 느낌은 떠올리기 조차 싫은 아픈 기억일 수도 있지요.
남에게는 비록 말할 수 없고 스스로에게 조차도 은근히 부끄러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은밀한 느낌의 기억도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도 잊혀지지 않는 느낌을 다시 떠올려 주는 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풍경일 수도 있고 혹은 어떤 풍경 속의 사람이기도 하고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열화당 사진문고 9「듀안 마이클」
제게는 이 책도 '잊혀지지 않는 느낌'을 떠올려주는 사물 중의 하나입니다.
꿈 '따위'는 포기하고 길바닥을 내달리겠다고만 다짐하던 그 시절.
포기해서 멀어져 간 것들을 문득 돌아보게 만들던 듀안 마이클의 사진들.
그 씁쓸한 느낌.「나를 덮쳐! 나도 어둠 속에서 후지산을 보고 싶어.」
놀랍게도 그는 어둠 속에서 눈덮인 후지산의 정상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驚くべきことに、暗闇の中に、雪に覆われた富士山の頂上が見え始めた。 |
12.
그녀가 그의 위로 걸터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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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놀랍게도 그는 어둠 속에서 눈덮인 후지산의 정상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제 저녁식사는 예전에 자주 들리던 칼국수집에서 했습니다.
수년 만에 들린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오셨네요' 하더군요.
함께 자리를 한 '출력소 멤버'들과는 자주 그랬던 것처럼,
스타벅스에 들려 저녁식사보다 더 비싼 티 타임도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친구는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저는 '이루고 싶었던 것' 그 자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한 채
꿈 '따위'는 포기하고 길바닥을 내달리겠다고만 다짐하던 그 시절,
포기해서 멀어져 간 것들을 문득 돌아보며 씁쓸해 하던 느낌,
그런 나날들의 풍경에 대해서만 언급한 듯 싶습니다.
저를 흥분에 휩싸이게 하고 저를 향해 덮쳐오는 '어마어마한 음부'는,
둘러봐도 제 곁에는, 이제 더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도 아니 뒤늦게 이제서야 제대로..
'어둠 속에서 눈덮인 후지산의 정상'을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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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미안. 나를 덮쳐! 늦었지만 나도 눈덮인 후지산의 정상을 보고 싶어.」 |
14.
15. |
● 「덧붙임 2006/02/12 pm1058 : 듀안 마이클의 장갑(Le gant)」'관심이 있다면' 보기 CLICK
99ep | 스핏츠(スピッツ)의 靑春生き残りゲーム(Seishun Ikinokori Game, 청춘 살아남기 게임).
EP로 이름붙여져 1999년 1월 1일자로 발매된 99ep는 공식적으로 폐반된 것으로 압니다.
이번 글의 BGM인 靑春生き残りゲーム을 포함, 이 EP에 수록된 세 곡은 모두 그대로 또는 NEW MIX되어
2004년 3월 17일 발매의 b-sides album인 色色衣(Iroiro Goromo, 이어붙여 기운 옷)에 재수록됩니다.
지금 이 글의 BGM은 NEW MIX된 靑春生き残りゲーム가 아니라
이제는 중고음반으로 밖에는 구입이 되지 않는 99ep 수록 버전입니다. |
青春の意味など知らぬ ネズミのように
청춘의 의미 따위 모르는 쥐처럼 | ● 靑春生き残りゲーム 노랫말 살펴보기
정리되지 않은 책꽂이 앞에서 절판된 몇 권의 책들과 뜯어낸 메모 뭉치들을 정리하면서 두서없이 떠오른 상념들은
잊혀지지 않는 느낌을 떠올리게 만들고, 그 느낌은 오래 전에 포기해서 멀어져 간 '꿈'을, 며칠에 걸쳐서 돌아보게 합니다.
'꿈'이라거나 '청춘의 의미 따위 모르는 쥐처럼(青春の意味など知らぬ ネズミのように)' 살면서
오랫동안 '살아남기(生き残り)'에만 급급하며 달려오기만 하다 보니..
'꿈'이든 '청춘의 의미(青春の意味)'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조차도 이제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데도. |
√ 靑春生き残りゲーム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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