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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코에게서 온 편지, 나오코에게 쓴 편지 直子から来た手紙、直子に書いた手紙 |
지난 월요일, 아침부터 찌푸린 하늘이라 비가 올 것 같다 싶더니,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비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좋아해도 빗속을 걷는 일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인데
점심을 마치고 식당을 나설 즈음 갑자기 굵어진 빗줄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듯 해서 그 날은 빗속을 걷는 것도 좋았습니다. |
이제는 그러지 않은지도 무척 오래 되었습니다만, 저는 예전에는 읽던 책 맨 마지막 면에다 무언가 써둔 적이 많았습니다.
그것들은 그 책을 읽고난 다음의 독후감일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때로는 그 하얀 여백이 일기장으로 쓰여지기도 했지요.
그 날, 귀가해서 책꽂이에서 꺼내서 뒤적거린 어느 소설책의 뒷면 여백에서 오래 전의 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기 안에서「사랑하는, 나의, 오랜 친구들」의 이름과 그 즈음에 군인의 신분이던 또다른 친구의 이름도 발견했습니다. |
침례병원 912호실. 자정이 막 지났다. 곤히 잠든 ○○. 새근거리는 소리가 무척 반갑다. 무라카미 하루키.
누군가가 하루키를 이야기할 때면 나는 무라카미 류 또는 아베 코보를 떠올린다. 그리고 ○○를 떠올린다.
몇 시간 전에 ○○가 병실로 전화를 했다. 나는 ○○에게 몇가지 거짓말을 했었다.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거짓말을.
나는 가끔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는 그저 보여주지 않는 것을 넘어서 다른 모습을 보여줘 버린다.
그들이 원하는 '나'를. ‥ 이월 초순에 마지막 휴가를 나올 ○○가 보고싶다.
○○가 병원에 입원하고 마취주사를 맞은 다음 수술실로 들어가고 몇박몇일씩 링거를 꽂고있으니
정말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와 ○○의 여자를 떠올린다. (또는 와타나베와 나오코 또는 미도리?)
소용돌이 고양이의 발견법(うずまき猫のみつけかた). 그것 참, 재미난 제목이군.
그리고 ○○와 ○○,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그리고 당연하게 사랑한다. |  |

村上春樹 | 그 당시의 ○○도 (그 시절의 20대가 다들 그랬듯이)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에게 매료되어 있었지요.
저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를 얘기하면서 은근한 동류의식을 주고받던 '그 시절의 그'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때로는 하루키의 '인물'스럽기도 했던 그 시절의 그를 추억하니 저도 몰래 입가에 미소가 빙긋 지어지는데,
정작 전화로 그에게 제가 했던 거짓말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지난 해 어느 날 토니 타키타니(トニ―滝谷)가 영화로 나왔다면서 저와 같이 보고싶다고 하던 ○○.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그런 말부터 시작헀던 ○○이었으니, (그 영화는 결국 함께 보지 못했지만)
제대 말년의 병장 신분이던 그 시절 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마 그는 아직도 하루키를 좋아할 듯 싶습니다. |
부산의 어느 대학교 앞 골목길에 있던, 천장이 유난히 낮았던 기억이 남아있는 어느 술집. ○○이 꾸려가던 그 가게.
테이블 두어개에 꽉 차버리던 그 좁은 가게에서 그가 들려주던 LP음반들.
예를 들면 Iron Butterfly의 In-A-Gadda-Da-Vida라든가 The Doors의 Light My Fire 또는 The End가 수록된 음반들.
담배연기 속에 흐르던 그런 음악들과 함께 우리가 꿈꾸던 것들. 그건 어쩌면 또다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우산에 후두둑 부딪던 빗소리가 좋았던 월요일, 그런 그 날 지나간 일기장에서 만나는 ○○. 그래서 다시 만나는 ○○과의 지난 날.
그 지난 날 시공간의 추억을 기록한 일기장이 되어주었던 소설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 |

노르웨이의 숲 | 당신이 1년간 제 곁에 있어주신 것에 대해서는, 저는 제 나름대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믿어주십시오. 당신이 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제 자신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로서는 아직 당신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겁니다. 만약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당신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좀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신이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알아야 하겠지요.
그럼 안녕히.
제3장에서 발췌「나오코에게서 온 편지」 |
나는 더이상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지만, 나오코라면 내가 느꼈던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나오코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예전보다도 더욱더 자주 나오코를 생각합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 내리는 일요일은 다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비가 내리면 빨래를 할 수 없고, 따라서 다림질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보도 할 수 없고, 옥상에 누워 있을 수도 없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카인드 오브 블루'를 오토리버스로 해놓고 되풀이해서 들으며 비내리는 안뜰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일요일에는 나사를 조이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편지가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여기에서 그만 끝맺겠습니다. 이제 식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할 생각입니다. 그럼 안녕.
제8장에서 발췌「나오코에게 쓴 편지」 |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 中에서. | 
ノルウェイの森 |
비오는 일요일, 하루키의 '인물'은 Miles Davis의 Kind of Blue를 들으며 비내리는 안뜰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비뿌린 월요일을 보낸 저는 그날 밤 스핏츠(スピッツ)의 あじさい通り(Ajisai Doori, 수국길)를 거듭해서 들었습니다. |

● あじさい通り 노랫말 살펴보기 | 언제였던가, 제 의식 속에 스핏츠의 あじさい通り,
이 노래가 위에 인용한 노르웨이의 숲 제8장 한 대목과 겹쳐진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예전보다도 더욱더 자주 나오코를 생각합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
雨 降り続くよ あじさい通りを
비 계속 내린다 수국길을
カサささずに 上向いて 走ってく
우산 쓰지 않고 위를 향해 달려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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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20일에 발매된 여섯번째 정규 앨범 ハチミツ(Hachimitsu, 벌꿀)에 수록된 곡.
언제였던가 내한 공연에서 쿠사노 마사무네(草野マサムネ)가 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불러주었던 곡.
음반을 구입하고 한참을 지나고서도 유독 와닿지 않던 노래, あじさい通り(Ajisai Doori, 수국길).
名も無い街で一人 初めて夢を探すのさ
이름도 없는 거리에서 혼자 처음으로 꿈을 찾는 거지 |
그러다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어느 한 대목에서 문득 이 노래가 떠올려지면서..
제 마음에 불쑥 와닿은 노래, 가슴 한 구석이 싸아~해지는 쓸쓸한 노래. あじさい通り. | 
ハチミツ |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저의 가슴 한 구석이 싸아~해지는 것은 이 노래 자체가 가지는 분위기 때문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스핏츠의 이 노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어느 대목과 함께 제게 '어떤 분위기'를 안겨주는데,
바로 그 '어떤 분위기'가 (이 노래가 가지는 원래의 의미를 넘어) 제 가슴 한 구석을 싸아~하게 만들고 쓸쓸함에 젖게 만듭니다.
저는 현재로서는 아직 당신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겁니다. 만약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당신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좀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신이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알아야 하겠지요. |
나는 예전보다도 더욱더 자주 나오코를 생각합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 내리는 일요일은 다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비가 내리면 빨래를 할 수 없고, 따라서 다림질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보도 할 수 없고, 옥상에 누워 있을 수도 없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카인드 오브 블루'를 오토리버스로 해놓고 되풀이해서 들으며 비내리는 안뜰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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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언젠가부터 저에게는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그 몇몇 대목이 마치 이 노래의 노랫말같이 느껴지더군요. |
√ あじさい通り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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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5/25 02:51 | 스핏츠/ALBUM | trackback (0) | reply (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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