角田光代の小説 Kakuta Mitsuyo no shousetsu 카쿠타 미츠요의 소설 |
ⅰ
2006년 4월 해냄출판사 간행. 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의 소설 내일은 멀리 갈 거야(あしたはうんと遠くへいこう)에서 발췌.
"우습게 보는 거 없어."
노부테루는 정말 성가셔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말이란 어쩜 이리 편리하고 거짓스러운 데다 부드러울 수 있는지.
우리는 그것을 입 밖에 내어 장황하게 떠들고 싶어지지만, 그런 얘기를 도무지 어떤 말로 어떻게 풀어내야 좋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아무 말도 않고, 좀더 어학 실력이 있었으면 하고 피차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설령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해도, 우리가 안고 있는 어떤 한 가지는 결코 언어가 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우리가 똑같이 무언가에 목말라 있고, 그것에 대해 언어를 다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피차 알아차리고, 황급히 웃는 얼굴을 지어 보이며, 내일 봐, 그렇게 말하고 헤어진다.
마지막에 한마디, '힘내!'라고 적혀 있었다. 나한테는 그 마지막 글자가, 자전거로 달리면서 짓밟았던 양의 똥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말야 이즈미. 불과 몇 달 만에 사람의 운명이 확 달라질 수도 있나 봐."
몇 달이 아니다. 인간의 운명을 크게 바꿔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건, 단 하루면 충분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그 사소한, 천진난만하고 죄없는, 아이처럼 솔직하고 무모한 감정이 별안간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어 와, 믿기 힘든 완력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비틀어버린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의 출처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싫은 점이며 맞지않는 점을 아무리 들어도 그 사람이 싫어지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
2001年 9月
マガジンハウス
あしたはうんと遠くへいこう |
일년에 한 차례 정도나 될까? 가끔씩 조차도 만나지 못하는 그로부터 건네받은 것들. 그렇다. 말 그대로 '건네받는다'.
마치 전달해야 할 메모지를 건네듯 그렇게 스윽 내민다. 특별한 날도 아니기에 그것이 내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다.
이를테면 나가부치 츠요시(長渕剛)의 싱글도 그런 선물 중 하나이고, 내일은 멀리 갈 거야라는 제목의 소설책도 그런 것이다.
가끔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존재를 확인한다. 요즘 그의 닉네임은 이렇다.「一年間の 一長春夢も いよいよ 終りだね」
일년 간의 일장춘몽도 드디어 끝?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만, 무언가 쓸쓸한 느낌이 살짝 든다. (Dyce.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ⅱ
2005년 8월 지식여행 간행. 가쿠타 미츠요(角田光代)의 소설 공중정원(空中庭園)에서 발췌.
도망치고 싶다. 마음속으로 여전히 그렇게 중얼거려보았지만 다음 순간에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다. 어디로? 도망치고 싶다는 그 도피처가 이 작은 집이 아니라면 나는 도대체 어디로 도망치고 싶다는 말인가?
가족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마치 전철에 함께 탄 사람들 같은 관계. 내 쪽에는 선택할 권리가 없는 우연으로 함께 살게 되어,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짜증을 내고, 진절머리를 내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래도 일정한 기간 동안 그곳에 계속 있어야만 하는 관계. 따라서 믿는다거나 의심한다거나 착하다거나 악하다거나, 그런 개인적인 성품은 전혀 관계가 없다.
난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 전문대를 나온 스무살 때, 어떤 일을 할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굳게 결심했다. 스물세 살이 되고, 스물다섯을 넘고, 다음 달에 스물일곱을 바라보아도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은 여전하다.
혼자 있을 때는 비밀이 되지 않는 일인데 가족들이랑 같이 있으면 숨길 필요가 생긴다. |
2002年 11月
文藝春秋
空中庭園
第3回 婦人公論文学賞 |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 타는 지하철. 약간 기댈 수 있는 가장자리 좌석에 앉았을 때. 그리고 승객끼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때.
그런 조건을 갖춘 지하철은 책읽기에 가장 쾌적한 공간 중의 하나가 된다. 특히 이렇게 무더운 여름철에는 더욱 그렇다.
물론 한강을 건너는 구간에서는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을 즐기기 위하여 잠시 책에서 눈을 뗀다. 그러한 '일시 멈춤'도 좋다.
한꺼번에 사놓고는 미뤄둔 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공중정원, 사랑이 뭘까 그리고 대안의 그녀(対岸の彼女).
지하철의 에어컨 덕분에 순식간에 목덜미가 뽀송뽀송해져서 상쾌하던 어느 날 문득 그 책들이 떠오른다.
「내일은 멀리 갈 거야 말고 카쿠타 미츠요(角田光代)의 소설, 다른 것들도 읽어 볼까? 요즘 지하철 시원해서 책 읽기 딱 좋은데.」
ⅲ
2005년 6월 지식여행 간행. 가쿠타 미츠요(角田光代)의 소설 사랑이 뭘까(愛がなんだ)에서 발췌.
"제발 그만둬, 데루.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 말야. 데루가 말하는 좋은 방향이라는 건, 현실에 기점을 두고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현실에서 벗어난 거라니까."
"서른 살이 가까워지니까 이런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거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면 패밀리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얼굴이 되고, 100엔 숍에서 물건을 사면 100엔 숍 얼굴이 되는 거라고. 내가 아는 여자 중에도 있는데, 몇 살인가 연하의 남자를 먹여 살리는데 정말이지 빈티나는 얼굴을 하고 있다니까. 나는 절대로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아."
얼굴이 내 취향이라든지 성격이 상냥하다든지 어느 한 면이 뛰어나서, 아니면 좀더 마음이 잘 맞아서라도 좋다. 무언가 플러스적인 부분을 좋게 생각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싫어지는 것도 간단하다. 플러스적인 요인이 하나라도 마이너스로 바뀌면 될 테니까.
"한밤중에 갑자기 사람이 만나고 싶어지는 건 나나 데루코 같은 사람들이에요. 원래 한없이 사람이 그리워지는 사람이 나 같은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이라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다가가는 것이고요." |
2003年 3月
文藝春秋
愛がなんだ |
사랑이 뭘까. 사랑이 뭐길래, 도대체 뭐길래 그토록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인지. 게다가 때로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거듭해서.
ⅳ
2005년 7월 지식여행 간행. 가쿠타 미츠요(角田光代)의 소설 대안의 그녀(対岸の彼女)에서 발췌.
최근 깨달았다. 수다를 떠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시어머니의 일도, 남편의 괘씸한 발언도, 이렇게 말을 하면 코메디 같아져서 금세 잊어버릴 수 있다. 말을 하지 않고 담아두면 사사로운 일들도 갑자기 무거운 의미를 갖게 되어 비극적이고 심각해진다.
"난 무서워. 무섭다는 건 대단한 거야. 난, 어른이 되어서 제대로 혼자서 돈도 벌고 있고 영업에도 뛰어들고 훨씬 나이 많은 남자와 싸워서 이길 자신도 있어. 그런데 아이를 낳는 것이 무섭다니, 뭐라고 할까. 좀 한심해. 하지만 자기가 낳은 아이가 성장해서 내가 모르는 일로 절망하거나 상처받을 걸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무서워. 내가 부모님께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그런 아이였거든. 나 같은 아이가 나오면 난 정말 싫을 것 같아."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소중한 것이 아니면 정말로 나머지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 정말로 소중한 것은 한두 개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고 무섭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아."
무엇을 위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걸까? 어른이 되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고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을까?
믿는 것이다. 그렇게 정했다. 그러니까 이제 무섭지 않다. 바보 같은 거짓말을 지어내 협박하는 남자가 있는 세계가 있는 한편, 일을 팽개치고 걷고 또 걸어서 빈 싸구려 숙소를 찾아주고 감사의 인사도 듣지 않고 사라지는 남자가 있는 세계도 있다. 마찬가지다. 나나코가 없는 이 세계가 있는 한편, 모르는 사람들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나나코가 존재하는 세계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후자를 믿겠다.
그 생각으로 얼굴을 빛내면서 벌써 메뉴를 생각하고 있는 그 부인을 보면서 사요코는 드디어 깨닫게 된 것 같았다. 왜 우리가 나이를 먹는지. 생활 속으로 도망가서 문을 닫아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만남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선택한 장소를 향해 자신의 발을 내딛기 위해서다. |
2004年 11月
文藝春秋
対岸の彼女
第132回 直木賞 |
나오키(直木)상을 받은 이력이 있는 소설이기도 하고 아마도 그의 작품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기도 할 대안의 그녀.
책 표지를 넘기면 첫 장에 제목이 나와 있고 그 제목 아래에 작은 글씨로 [대안 對岸_강 건너 기슭]이라고 해두었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우리말 제목을 대안의 그녀로 하지 말고 차라리「강 건너 기슭의 그녀」라고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을.
ⅴ
네 권의 소설책 그 마지막 장들을 지하철에서 넘기고 난 어느 날, 서점에 들린다.
일본 소설을 모아둔 코너에서 그리고 신간 코너에서 같은 작가의 또다른 소설책을 발견한다.
인생 베스트 텐(人生ベストテン)이란 것 그리고 신간으로 나온 죽이러 갑니다라는 제목의 소설책.
둘 다 집어 들었다가 장편소설이 아니고 단편소설집이란 것을 알고는 슬그머니 내려 놓는다.
그러다가「角田光代(かくたみつよ)」라는 작가의 이름 표기가 은근히 마음에 걸린다.
'해냄출판사'라는 곳에서는 가쿠다 미쓰요,
'지식여행' 또는 '작품'이라는 이름의 출판사에서는 가쿠타 미츠요,
죽이러 갑니다를 간행한 '미디어2.0'에서는 가쿠타 미쓰요.
(혹시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눈에 띈 것만 해도 이렇게 세 가지나 된다.
아무튼 가쿠다 미쓰요, 가쿠타 미츠요, 가쿠타 미쓰요 중에서
어느 것이 원어민의 발음과 가장 유사한 것일까? 궁금하다.
혹시 이도 저도 아니고 .. 카쿠타 미츠요? |
2005年 3月
講談社
人生ベストテン |
ⅵ
내일은 멀리 갈 거야.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읽었던 그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분명 내게 지식은 없다. 지식도 소양도 감성도 없으니, 그저 좋은지 싫은지를 말하는 수 밖에 없다. 좋다 싫다 한마디로 끝낼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정이라든지 내면이라든지 기억이라든지, 하나의 곡에서 떠오르는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을 뒤집고 이어 붙여 문장으로 만들 뿐이다. |
지하철로 오가면서 카쿠타 미츠요의 장편소설 네 편을 읽고난 지금의 내가 그렇다.
개인적인 사정이라든지 내면이라든지 기억이라든지, 하나의 소설에서 떠오르는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을 뒤집고 이어 붙여 문장으로 만들 수도 없으니, 이렇게 소설의 본문 만을 장황하게 인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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