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화양연화 |
ⅰ
요즘 제가 즐겨 듣는 음악 중에서 최신 곡을 꼽자면 휘성의 최근 발매 앨범 수록곡 중 몇몇을 들 수 있습니다.
타이틀 곡으로 내세운 사랑은 맛있다♡도 괜찮고, '휘성표 발라드' 스타일인 다쳐도 좋아도「역시 휘성!」이라는 느낌이 옵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차안남녀라는 제목의 곡도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이런 곡을 발견하는 기쁨은 역시 앨범 단위로 음악을 즐길 때 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Eternal Essence of Music | 다만, 최근 우리 가요계에서 '마이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작곡가 박근태가 프로듀싱한 음반이면서도
14 트랙의 수록곡 중에 왜 외국곡을 세 곡이나 넣었을까 하는 의문으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
그리고 CD 케이스가 (개인적인 불만이겠지만) 자칫하면 모서리가 상하기 쉬운 종이 재질이라는 것,
그 두가지 정도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 뿐입니다. (케이스는, 사실 '문제'랄 것도 없는 것이고. ^^)
이 의문과 불만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고 완성도 역시 높은 앨범으로 생각되더군요.
이 앨범이 발매되기 직전인 지난 8월 말, 친구가 저에게 휘성 콘써트 보러가자고 했는데
9월 들어서 그의 신곡을 즐기고 나서야, 그 때 왜 곧바로 '그러자!'고 말못했을까 아쉬워졌습니다. |
아무튼 그 친구는 휘성의 콘써트「2007 WHEESHOW / Welcome to Realslow World」에서 받은 감동으로 황홀한 듯 했는데
저는 휘성의 신곡을 그리고 이참에 오랜만에 안되나요 등과 같은 예전의 히트곡을, 고작(!) 카 오디오로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아니면 그 사람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돼요 /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얼마 전 그 친구가 휘성의 안되나요를 들으며 흥얼거리다가 문득 제게,
저런 감정이 가능하냐고, 그런 것도 과연 사랑이냐고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의 품새로 추측컨대, 그것은 그런 감정이나 사랑에 대한 '궁금증'이라기 보다는
저런 감정이 도대체 가능하냐, 그게 과연 사랑이라 할 수 있냐는 '의구심'인 듯 했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 곁에서 '힘들어하는 표정 없이 행복해 하는 그대'가 싫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그대가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된다는 사랑.
혹시 그것도 안된다면 '나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괜찮다는.. 어쩌면 불가해(不可解)한 듯한 사랑. |
Like a Movie |
양차오웨이(梁朝偉). 화양연화(花樣年華)
장만위(張曼玉). 화양연화(花樣年華) | 안되나요
작사 박경진
작곡 이현정
노래 휘성
너무 힘들어요 다른 사람 곁에 그대가 있다는 게
처음 그댈 본 날 훨씬 그 전부터 이미 그랬을 텐데
어쩌면 헤어질지 몰라 힘겨운 기대를 해봐도
단 한번 힘들어하는 표정 없이 행복해 하는 그대가 싫어요
안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조금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돼요
아니면 그 사람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돼요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하루는 울고있는 그대 멀리서 지켜본 적 있죠
그렇게 울다 지쳐서 그 사람과 이별하게 되길 기도하면서
안되나요 그대 이별하면 이제 그 자리에 내가 가면 안돼요
아니면 그 사람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돼요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힘들 그대 모습 생각해보면
벌써 그대 때문에 아플 나를 만나지만
사랑할 수 없는 그대를 보면
너무 아픈 가슴 다 쓰러져만 가는데
안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조금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돼요
아니면 나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돼요
그대만 내게 있으면 그대만 있어준다면 |
저런 감정이 생기는 것이 누구에게라도 가능한 건지 그런 모양새의 사랑이 예사로 있는지, 잘 모르기는 저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 감정과 사랑의 당사자라고 가정하고 자문해봐도 그게 정확히 어떤 감정 또는 어떤 사랑인지 '궁금증'만 더 커질 뿐
그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쉽사리 찾아지지 않습니다.
혹시 그것은 애당초 해답(解答)이란 것을 찾을 수 없는, 불가해(不可解)한 사랑일까요?
저런 감정이 가능하냐고, 그런 것도 과연 사랑이냐는 친구의 말에, 무어라 바로 대답할 수 없었던 저는‥
대답 대신에 그 친구에게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이야기를 잠시 건넬 수 있었습니다.
휘성의 그 노래 제목이 정확히는 ..안되나요.. (부제:화양연화)였던 것이, 마침 생각난 덕분이었지요.
ⅱ
in the mood for love | ― 1962년 홍콩.
같은 날 이사를 와서 서로 이웃이 된 양차오웨이(梁朝偉) 그리고 장만위(張曼玉).
어느 날 장만위가 들고 다니는 핸드백이 양차오웨이의 아내의 것과 같다는 것에서
게다가 양차오웨이의 넥타이 마저도 장만위의 남편의 그것과 같다는 것에서
그리고 그 핸드백과 넥타이가 홍콩에는 없고 해외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들은 그들 각자의 아내와 남편이 자기들 몰래 만나는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아픔을 가지게 된 양차오웨이와 장만위. 서로의 가슴 속으로 다가가게 된다. 스스로 알지 못한 채. ― |
왜 갑자기 떠나려 하죠?
주위에서.. 우리 소문이 무성해요.
우리만 결백하면 되는 것 아녜요?
나도 처음엔.. 당신처럼 생각했죠. 우린 그들과 다르다고.
그런데 틀렸소. 당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떠나야해요.
.. 날 사랑했다는 말인가요?
나도 모르게.. 첨엔 그런 감정이 아니었소.
하지만.. 조금씩 바뀌어 갔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이 남편과 있다고 생각하면.. 미칠 정도로.
난 나쁜 놈이오. |
― 그러면서도 장만위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고 기다리는‥
하지만 결국 혼자 싱가포르로 떠나게 되는 양차오웨이. ― |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
―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했던 양차오웨이와 장만위. 고작해야 손 한번 잠깐 쥐었다가 놓은 정도일 뿐.
서로의 가슴 속으로는 다가갔지만 결국 한 발자국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헤어지고 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 1963년 싱가포르. ―
모르죠? 옛날엔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알 게 뭐야?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에 구멍을 파서..
자기 비밀을 속삭이곤 진흙으로 봉했다고 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산까지 갈 바엔 잠이나 한숨 더 자겠어.
그래요?
난 자네처럼 감출 비밀이 없어. 고민 있으면 내게 털어놔.
.. 고민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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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
― 1966년 홍콩.
홍콩으로 돌아와 예전에 살던 집에 들려보는 양차오웨이.
새로운 집주인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옆집에는 요즘 누가 사느냐고 물어보자 '애 딸린 여자 한 사람이 산다'는 집주인의 대답.
그녀가 바로 장만위임을 알지 못하고‥ 그 집을, 그녀와의 추억이 어린 그 동네를 떠나는 양차오웨이. 그렇게 어긋나고 마는 남녀. ―
― 196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사라져버린 세월은 한 무더기 벽과 같다.
먼지 쌓인 유리벽처럼, 볼 수는 있어도 만질 수는 없다.
그는 줄곧 과거의 모든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만약 그가 먼지쌓인 벽을 깨뜨릴 수만 있다면,
그는 이미 사라진 세월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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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
― 앙코르와트의 어느 유적 앞에서, 석벽에 패어있는 구멍에 자신의 오랜 비밀을 속삭이는 양차오웨이.
그 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사랑을, '가장 아름다운 한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의 사랑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수천년 동안 말없이 서있던 석벽의 구멍에 남기고는 그 자리를 봉인하고 돌아선다. ―
ⅲ
친구와 화양연화 이야기를 끝내고는 이런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 안되나요가 수록된 Like a Movie 앨범이 발매된 2002년에는, 휘성이 스무살 시절에 막 들어섰을 무렵일텐데,
‥ 이미 '다른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 곁에서 '힘들어하는 표정 없이 행복해 하는 그대'가 싫긴 해도
‥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내 곁에만' 있어주길 바라고, 혹시 그것도 안되면 '나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괜찮다는,
‥ 불가해(不可解)한 듯한 사랑을, '어른'들의 사랑을,
‥ 그 즈음에야 미성년을 지나쳐온 휘성이 과연 그런 감정을 가슴으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제 마음대로의 짐작입니다만, 저는 2002년의 휘성이 아마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으리라 생각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되나요가 절절하게 와닿는 노래가 되어 크게 히트쳤던 것은 아마도 아니 분명,
걸출한 보컬 솜씨에서 비롯된, 휘성의 곡 해석 능력이 듣는 사람들의 감성을 깊숙하게 건드렸기 때문이겠지요.
스무살에 들어섰을 때의 감성으로 노래했던 안되나요에서 오년의 세월이 흐른 뒤
휘성은 새로운 앨범 Eternal Essence of Music의 더블 타이틀 곡 중 하나인 다쳐도 좋아에서도
오래 전 안되나요에서 노래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노래합니다.
너무 사랑하니까 너뿐이니까 죽어도 너여야만 하니까
한 발짝도 너를 떠나선 살 수 없는 나니까
다쳐도 좋아 아파도 좋아 이대로 난
너를 바라보면서 그리워하면서 널 기다리면서 그렇게 살면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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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성 |
어쩌면 안되나요와 비슷한 감정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인지도 모르겠군요.
뭐랄까요, 안되나요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더 피학(被虐)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스무살 초입 무렵과는 달리 이십대 중반을 들어선 지금의 휘성은, 그동안 혹시 겪었을지도 모를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는 것일까요?
ⅳ
가끔, 말입니다. ‥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짧게는 십여년 길게는 이십년 가깝게 그 사회 나름대로의 규범에 벗어나지 않는 교육을 받습니다.
전문 분야를 배우는 대학에서는 그것이 '필수 과목'에서 벗어나겠지만,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사회 규범'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지요.
그 과목의 타이틀이 '바른생활'이든 '도덕'이든 '윤리'든 그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런데도 왜 사랑은, 그렇게나 교육받은 '사회 규범'이라는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가끔 그리고 여기저기서 '삐딱선'을 타는 것일까요? |
花樣年華 |
사랑은 눈에 콩깍지가 끼는 것이어서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사랑이라는 것의 속성에는 원래 '사회 규범'과는 그다지 상관없이 동작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가요?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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