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일본의 대중음악을 제가 즐기는 정도에 비한다면 일본의 TV 드라마는 아직 그다지 많이 접해보지 못한 편입니다.
일음을 즐긴다고 해도 고작(?) 스핏츠(スピッツ) 뿐이지 않냐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액션가면ケイ이지만. ^^
아무튼 그동안 제가 봤던 일본의 TV 드라마를 하나 둘.. 모두 꼽아봐도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하네요.
소위 '일드' 중에서 제가 처음으로 본 것은 1999년 방영 드라마 오버 타임(オーバー・タイム, Over Time)이었는데
그 드라마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스핏츠의 노래가 어떤 장면에서 흘러나오는지 궁금해서 보게된 것이지요.
그 이후 본 드라마로는 2005년의 전차남(電車男, Denshaotoko), 2003년에 방영되었다는 굿럭(GOOD LUCK!!)이 있고
2006년작 노다메 칸타빌레(のだめカンタービレ, Nodame Cantabile)는 보다가 말았습니다.
그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지못한 채 중간에 관둬버려서 그랬는지‥, 이후 '일드'에 대한 관심도 뜸해진 듯 했습니다.
제대로 시작도 못했는데 그렇게 슬그머니 '일드'로부터 멀어졌다가 최근에 여러 편의 '일드'를 연거퍼 보게 되었습니다.
최종회의 경우 그 시청률이 41.3%까지 올라갔다는 2000년의 뷰티풀 라이프(ビューティフルライフ, Beautiful Life)로 시작해서
며칠 전 극장판으로 국내에도 개봉된 바 있는 드라마인, 2001년의 히어로(HERO)와 2006년의 히어로 특별편,
그리고 주제가를 비롯하여 삽입곡으로 Queen의 히트곡들이 도배되다시피 한, 2004년의 프라이드(プライド, Pride)까지.
예전의 대장금과 같은 히트작이나, 지금의 태왕사신기와 같은 우리네 TV 드라마도 본 적이 없고
최근 꽤나 시청률이 높았다던 커피프린스 1호점도 한두 회 밖에 보지 않았을 정도로 TV 드라마에 심드렁한 제가
각각의 회수로 꼽으면 삼십 회도 넘는 분량의 '일드'를 봤다는 것은, 잠깐 동안이나마 제 나름대로는 '일드 폐인'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를 '거의 실시간'으로 즐긴다는 진짜 '일드 폐인' 또는 '미드 폐인'이 들으면 코웃음칠 얘기지만요.
뷰티풀 라이프, 히어로, 프라이드. 일본의 TV 드라마에 익숙하다면 바로 알아챘을 겁니다.
네. 최근에 제가 연달아 봤던 것들은 모두 키무라 타쿠야(木村拓哉) 주연의 드라마입니다.
제가 굿럭을 볼 때만 해도 그 선택 기준이 키무라 타쿠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지만
이번의 '일드 달리기'의 선택 기준은 키무타쿠(キムタク) 즉, 키무라 타쿠야였습니다.
혹시 이번의 저처럼 키무타쿠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여러 편 보신 적이 있다면
어떤 드라마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혹시 제가 봤던 이 네 편 중에 있나요? |
新番組 プライド |
각 회별로 하나의 사건이 완결되는 히어로는 그 다음 회에 대한 갈증이 상대적으로 덜해 '폐인 모드'로 빠지지 않아 편안했고(?)
줄거리 흐름으로 보자면, 위에 언급한 것 넷 중에서는 키타가와 에리코(北川悦吏子) 각본의 뷰티풀 라이프가 마음에 듭니다.
제 맘에 드는 캐릭터를 연기한 키무타쿠라면 굿럭을 꼽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타케나카 나오토(竹中直人)가 출연하기도 했구요.
이미 키무타쿠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기에, 거두절미하고 오로지 키무타쿠에게만 집중하겠다는 팬이라면 프라이드일 수도 있겠네요.
ⅱ
그 중에서 프라이드.
2004년 1월 12일부터 3월 22일까지 방영되었던, 후지(フジ)TV의 월요일 밤9시 드라마.
해외로 떠난 후 2년째 소식 한 번 주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아키(亜樹).
친구들과 보러갔던 아이스 하키 경기의 뒷풀이 장소에서 하루(ハル)를 만나게 되고‥.
아이스하키 실업 팀 블루 스콜피온즈의 캡틴인 하루.
연애는 게임과 같은 것이라면서, 아키에게 남자가 돌아올 때까지만 게임처럼 사귀자고 하는데‥.
남녀관계의 진지함을 의식적으로 피하던 그가 아키를 사귀면서 서서히 변해가고.
달라진 하루가 그녀에게 '게임 오버'라고 하면서 이제는 진심으로 '시작' 하려고 할 때.
먼저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선택을 그녀에게 넘기는 하루, 그런 그에게서 떠나갈 수 밖에 없었던 아키‥.
| |
그렇게 헤어진 후 어느 날. 같은 팀의 야마토(大和), 마코토(真琴), 토모(池上友則) 등이 하루의 집에 모이고.
팀의 막내 마코토(真琴)는 심부름 나가고 야마토(大和)는 실연의 아픔으로 술 취해 쓰러져 잠들었을 때.
같은 팀의 동료이자 한편 하루의 친구이기도 한 토모(池上友則)는 하루에게 넌즈시 충고를 하는데‥.
토모 | 너 너무 폼 잡는단 말이야.(お前 格好つけすぎなんだよ。)
마지막에 가서는 잡아주지 않을 것같은 느낌이 들어.
가지 말아달라고 말했어? 애인한테 돌아가지 말라고 울면서 매달려 봤어? | 하루 | 울면서 매달리다니 뭐야, 그게? | 토모 | 눈물은 여자만의 것이 아니야. | 하루 | 아~. 그런 게 너의 신용? 그런 건 한심하잖아. | 토모 | 필요하다면 난 무릎이라도 꿇어. | 하루 | 그거 한번 하라고 부탁하는 거야? | 토모 | 어쨌든, 어떻든 말이야. 뭐, 무릎 꿇는 건 오버지만.
「자, 애인이 돌아왔습니다. 이만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라는 건 여자 쪽도 어쩔 수 없다구.
「뭐야? 이 정도 밖에 좋아하지 않았던 건가?」라고 말이야. | 하루 | 난 그 쪽이 더 편한 걸. | 토모 | 겉멋든 말 하지마, 하루!(きれい事 言うなよ、ハル!)
좋아하는 여자 앞이라면 좀더 보기 힘든 일해도 괜찮잖아.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는 게 힘들다구. 방귀도 안 뀌면 가스가 가득 차서 힘들다~. | 하루 | 난 방귀같은 거 안뀌는데 뭐. | 토모 | 왠지 좀 귀여운데. | 하루 | 뭐야, 그게? | 토모 | 프라이드 버리는 것도 의외로 프라이드가 필요한 일이지.
(プライド捨てんのも 案外プライドいるんだよね。) |
∼ TV드라마 프라이드(プライド, Pride) 8화 비극(悲劇) 中에서 |
TV ドラマ プライド
Period 8 |
토모(友則) 역의 이치카와 소메고로(市川染五郎)와 하루(ハル) 역의 키무라 타쿠야가 나누는 다이얼로그인데요.
그 다이얼로그 중에서「너 너무 폼 잡는단 말이야.(お前 格好つけすぎなんだよ。)」라든지
또는「겉멋든 말 하지마, 하루!(きれい事 言うなよ、ハル!)」같은, 하루를 향한 토모의 대사는
드라마 안에서 주인공 하루에게 토모가 그의 친구로서 건네는 충고의 말이지만
그 대사가 제게는 드라마 프라이드에서의 키무라 타쿠야를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 부여잡기' 세리머니라든지, 씨익 웃으며 입버릇처럼 말하는「메이비(メイビー, Maybe)」등을 비롯,
'너무 폼 잡는(格好つけすぎ)' 그리고 '겉멋 든 말을 하는(きれい事 言う)' 키무라 타쿠야의 모습이 넘치는 프라이드거든요.
키무라 타쿠야가 연기한 하루(ハル)는 나무랄 데 하나 없는, 혹은 있다 해도 그것 조차도 멋있게 표현되는 캐릭터라서
몇몇 장면에서는, 이거‥ 조금 지나친데? 라든지 이거‥ 약간 만화같다, 싶어서 저도 몰래 피식 쓴웃음이 지어지기도 했지만
그의 팬이라면 아마도 '모양이 나고(格好をつける)' '멋있다(きれいだ)'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프라이드에 열광하는지도 모릅니다.
ⅲ
We Will, We Will Rock You !! | 영국의 밴드 Queen을 좋아한다면, 이 드라마 프라이드는 또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매회 오프닝으로 나오는 주제곡 I Was Born to Love You를 제외하고도
매회 적어도 한 곡 이상 그들의 곡이 나올 만큼 Queen의 음악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주요 남자 출연진 모두가 아이스 하키 선수 또는 코치의 역할을 맡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경기 장면에서 당연히 흘러나올 것이라고 짐작되는 We Will Rock You를 시작으로
RADIO GA GA,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Another One Bites the Dust,
Somebody to Love 등의 히트곡은 물론,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들까지
Queen의 팬이라면 '아~ 그 노래, 오랜만이야!'라고 할 만한 곡들이 여럿 흘러나옵니다. |
특히「사랑이라는 이름의 긍지(愛という名の誇り)」라는 부제가 붙은 마지막 회에서
그린 몬스터와의 시합 도중 쓰러져 잠깐 실신한 하루가 '얼음의 여신(氷の女神)'을 보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바로 수많은 Queen의 노래 중 최고의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Bohemian Rhapsody로,
Freddie Mercury의 노랫말과 Queen의 연주가 프라이드 최종회에서의 그 장면과 한데 어우러지는 한 편의 뮤직 비디오이기도 합니다.
이런 드라마라면 We Are the Champions나 Spread Your wings와 같은 곡도 들어갔어야 하는 것 아냐? 싶기도 했는데
Queen의 곡이라고 해서, 그런 곡들을 삽입곡으로 추가하는 것은 너무 도식적인 선곡일 거라는 느낌이 금방 들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제 마음대로의 생각으로) 프라이드에 삽입곡을 하나 더 덧붙인다면
1976년에 발매된 Queen의 다섯번째 정규 앨범 A Day at the Races 수록곡 중 하나로
기타리스트 Brian May가 만든 Teo Torriatte (Let Us Cling Together)는 어떨까 싶네요.
프라이드에서는 이 앨범 수록곡 중 Long Away, Somebody to Love 그리고
Good Old Fashioned Lover Boy 이렇게 세 곡을 삽입곡으로 쓰고 있는데
'손을 맞잡고(手を取り合って)'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의 영문 표기를 제목으로 한 마지막 트랙,
Teo Torriatte (Let Us Cling Together)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노래이지만
이 드라마 프라이드에서 어딘가 어울릴 것 같은 장면이 있을 듯 싶습니다.
영어권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후렴부가 일본어로 불리워지기도 한다는 것도 나름 의미있어 보이구요. |
A Day at the Races |
● Teo Torriatte (Let Us Cling Together) 노랫말 열기 CLICK
When I'm gone
No need to wonder if I ever think of you
The same moon shines
The same wind blows
For both of us, and time is but a paper moon
be not gone
Though I'm gone
It's just as though I hold the flower that touches you
A new life grows
The blossom knows
There's no one else could warm my heart as much as you
be not gone
Let us cling together as the years go by
Oh my love, my love
In the quiet of the night
Let our candle always burn
Let us never lose the lessons we have learned | Teo torriatte konomama iko
Aisuruhito yo
Shizukana yoi ni
Hikario tomoshi
Itoshiki oshieo idaki
Hear my song
Still think of me the way you've come to think of me
The nights grow long
But dreams live on
Just close your pretty eyes and you can be with me
dream on
When I'm gone
They'll say we're all fools and we don't understand
Oh be strong
Don't turn your heart
We're all
You're all
For all
For always |
* 일본어 노랫말의 영문표기는 앨범 부클릿에 의거한 것입니다.
ⅳ
이런.. 새벽 4시군요. 걱정거리가 있어 잠도 오지 않기에 두서없이 주절거리다보니 그만..
무슨 얘기를 하려다가‥ 그만둔 모양새가 되었네요. 그렇다고 내일 다시 고쳐 쓰기도 그렇고.
프라이드 이야기에 슬그머니 끼워서 하려던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프라이드와 상관없이, 키무라 타쿠야와 무관하게, 이 새벽, 애당초 하려던 말을‥ 곱씹어 봅니다.
프라이드 버리는 것도 의외로 프라이드가 필요한 일이지.
プライド捨てんのも 案外プライドいるんだよね。
― 안녕히 주무십시오.
√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