夕陽が笑う、君も笑う Yuuhi ga Warau, Kimi mo Warau 저녁해가 웃네, 너도 웃네 |
ⅰ
― 그걸로 고른 거야?
― 응, 읽고 싶어서 찍어둔 책인데 훑어보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
― 그래? 어떤 건데?
― ‥ 아냐, 관둘래.
― 읽고 싶었던 거라며? 근데 왜?
― 그냥. ‥ 아무래도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 뭐야? 그냥 사서 보면 되는 거지, 일껏 골라놓고 여유가 없다는 건 또 뭐야?
― 두께도 장난 아냐. 600페이지야. 됐어, 안살래. ‥ 넌? 다 고른 거야? 그럼 나가자.
사서 읽겠다고 제 딴에는 마음 속에 '찍어둔' 번역서 중의 하나였지만
사지 않고 그냥 서점을 빠져나와 버린 탓에, 결국 '찜'만 해두고 잊혀질 책이 될 수도 있었는데. |  |
서점에 가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는지 단지 만남의 장소로 서점을 정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날.
그날로부터 한달 쯤 지났던가? 아무튼 한참 지난 어느 날. 그날 서점에 함께 갔던 그 친구가 '선물'이라면서 내게 불쑥 내미는 것.
그것은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Ⅰ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The God Delusion)」.
2008년 1월.
도킨스의 논증에 동의하든 반박하든, 신의 존재를 믿든 부정하든, 신앙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든 아니면 종교 따위는 똥으로 여기든,
그런 것은 일단 제쳐 두고 말이지, 나는 그 친구 덕분에 감탄할 만한 과학 서적 한 권을 읽는 즐거움으로 2008년 새해를 시작했다.
ⅱ
모든 행운이란 그런 것이라네. 저절로 만들어지는 행운 같은 건 세상에 없어.
행운의 절반은 스스로가, 나머지 절반은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따라서 자네의 성취는, 자네의 친구들이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누군가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로 인해 아픔을 겪을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네.
때로는 그 고통과 시련을 나누어 둘러메야 하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감수할 수밖에. 아픔을 딛고 일어날수록 우리는 성장해가는 것이지.
친구들과 함께 풍요로운 인생을 즐기게, 친구.
그리고 자네와 자네의 커피숍이 세상의 많은 친구들에게 행운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네.
∼ 스탠 톨러(Stan Toler)의 「행운의 절반Ⅰ친구 (The Secret Blend)」 중에서. |  |
앞으로 이렇게 다 함께 만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다들 생각한 참이라, 강남역사거리에서 다시 만나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날 낮. 앞으로 행보를 서로 달리 할 우리들 중 한 친구는, 배려심 깊은 그는 선물이라면서 각각 다른 책을 친구들에게 건넸었다.
어떤 친구에게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소설책을, 나에게는 스탠 톨러의 「행운의 절반Ⅰ친구」라는 제목의 책을.
표지를 넘기니, 「나의 소중한 친구 ○○○에게」라고 한 다음 올망졸망한 그의 글씨로 한 줄의 덕담을 덧붙여 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날 저녁,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의 뷔페에서 '우리가 함께 했던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다들 웃어댔다. 늦게까지 모두 즐거웠다.
2008년 2월.
며칠 뒤 「행운의 절반Ⅰ친구」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난 다음 앞 표지 안쪽에 적힌 그의 한 줄 덕담에 다시 눈길을 돌렸다.
건방지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그에게 행운의 절반을 만들어주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아니, 되어야겠다고.
ⅲ
책 제목이 다소 자극적인 혹은 선동적인 것은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그렇게 정한 듯 싶은데,
아무튼 그런 제목과 표지 장정 때문에/덕분에 적당한 무게로 부담없이 느껴지기도 하는 책.
하지만 각 장마다 참고문헌의 목록과 각주가 열거되는 만큼 때때로 페이지 넘기기가 쉽지 않은 책.
김종덕 등 10명의 일본 고전문학 전공자가 쓴, 「그로테스크로 읽는 일본 문화」.
김후련의 「그로테스크의 정수, 일본의 성문화」가 첫번째 장이라서 제일 먼저 읽게 되었는데,
에도(江戸)시대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絵)의 한 장르인 마쿠라에(枕絵)에 대한 언급도 상당했다.
일본에 갈 일이 생기면 컬러 도판의 마쿠라에가 수록된 화집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음양사(陰陽師)」를 DVD로 사두고는 어쩌다 보지도 않은 채 제쳐두었는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한정미의 5장 「이인 음양사의 세계」, 이용미의 9장 「일본 요괴 문화의 계보」부터 읽을 참이라서. |  |
후라이드 치킨이든 찜닭이든 닭으로 만든 요리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나는, 지난 3월 어느 날 그와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었다.
그 역시 가끔 삼계탕을 즐기는 듯 해서 다행이었는데,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이런 저런 얘기 중에 그는 책 한 권을 내게 건넸다.
예상치 않았던 책 선물에 기쁜 마음이 앞서, 식탁에서 「그로테스크로 읽는 일본 문화」의 목차를 살펴보면서 잠깐 훑어봤더니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에 녹아있는 일본 전통 문화에 대한 언급 등,
잠깐 접했다가 지나친 것들, 한때 관심을 가졌다가 잊혀진 것들, 새롭게 관심이 가질 만한 것들이 여기저기에서 눈길을 잡아 끌었다.
2008년 3월.
앞으로는 서로 편하게 지내자 어쩌구 하면서 요란스럽게 선언을 하고 그런 것은 딱히 아니지만
그리고 서로의 호칭이 달라지거나 말투가 변한 것 역시 결코 아니고, 그동안 서로 갖추어오던 예(禮)도 앞으로 여전할 것이지만
올해 봄이 되자 슬그머니 그가 친구로 느껴졌다. (혼자 엉뚱하게 짐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역시 그런 듯 싶었다.
ⅳ
책읽기의 즐거움, 600페이지 만큼의 두툼한 즐거움을 주는 친구. 그가 그리고 내가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상관없이 그냥 좋은.
친구가 겪을 아픔을 기꺼이 나누어 둘러메고픈 친구. 행운의 절반을 만들어주고픈 친구. 그래서 인생은 풍요롭다고 믿는.
처음에 친구로 만난 것도 아니고 무엇 하나 달라진 것도 없는데 어느새 스스로는 그렇게 느껴진 친구. 그도 그럴 거라고 끄덕이는.

ヘアピンカーブ | 스핏츠(スピッツ)의 7번째 앨범 インディゴ地平線(Indigo Chiheisen, 인디고 지평선) 수록곡,
夕陽が笑う、君も笑う(Yuuhi ga warau, Kimi mo Warau, 저녁해가 웃네, 너도 웃네)를, 지금 듣는다.
ヘアピンカーブじゃ いつも傷ついてばかり
헤어핀 커브(Hairpin Curve)에선 언제나 상처만 입을 뿐 |
내게 책 선물을 해준 친구들을 떠올리고 있던 참에 이 노래를 듣고있어서 그런지,
그들 중 한 친구의 요즈음에 문득 '헤어핀 커브'의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하지만 스핏츠의 노래와 달리, 그는 그다지 상처 입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운전' 솜씨를 믿으니까. |
夕陽が笑う 君も笑うから 明日を見る
저녁해가 웃네 너도 웃으니까 내일을 꿈꾸네 |
내게 '두툼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그 친구, 그 녀석의 미소 띤 얼굴도 저녁해 만큼이나 예쁘다.
흐음‥, 그런데 그가 꿈꾸는 내일은 어떤 것일까?
勝手に決めた リズムに合わせて歩いていこう
멋대로 정한 리듬에 맞춰서 걸어가 보자 |
그리고 그가 가질 행운의 절반을 만드는데 내 몫도 있었으면 하는 그 친구.
'멋대로 정한 리듬'을 그에게 대입시키면 그것은 그 녀석의 '자유의지(自由意志)'를 뜻하는 게 될 거다.
그 스스로 품고있는 이상을 향해서 한발 두발 나아갈 때 그가 선택한 리듬.
그 자유로운 의지, 리드미컬하게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의 의지. 그래‥, 리듬에 맞춰서 걸어가 보자구.
● 夕陽が笑う、君も笑う 노랫말 살펴보기 | 
1996-10-23
インディゴ地平線 |
√ 夕陽が笑う、君も笑う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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