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얼마 전 제 친구가 중국에서 생산된 자전거 한 대를 구해주는 덕분에 자전거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접이식 자전거라서 한강시민공원 주차장까지 차에 싣고 가서는 꺼내어 타기만 하면 되어서 편했습니다.
덕분에 평소에 차창 밖으로만 쳐다보던 강변 풍경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게 되어서
건강을 위한 스포츠의 의미는 물론, 그런 의미에서도 그 자전거를 구해준 친구가 한번 더 고마웠지요.
압구정 쪽 한강시민공원에서 잠실대교 남단까지, 또 하루는 여의도를 지나 방화대교 남단까지,
또 어떤 날 저녁에는 잠수교를 건너가서는 강북 쪽 자전거도로를 타고 잠실대교 북단까지 가서
그 자전거를 구해준 그 친구가 밤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  |
그런데 한강변에서 몇차례 자전거 타기를 즐기고나니 속도 문제라든지 하는 약간의 아쉬움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그 아쉬움들을 해결하고픈 마음이 커지자 제 눈길은 한강변을 달리는 다른 자전거들을 향하고 쇼핑몰 검색창에 자전거를 입력했고
결국, 친구가 구해준 자전거로 새로운 즐거움에 빠져든지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새 자전거를 '지르게' 되었습니다.
처음 탔던 자전거는 16인치의 작은 바퀴에다가 기어 변속도 되지 않는 자전거라서
오르막길을 만나면 허벅지가 긴장할 수 밖에 없고 기어 변속도 안되니 힘 조절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최고 속도도 20km/h 정도가 고작인가 싶으니, 한마디로 그저 '샤방샤방'한 느낌으로 타는 자전거였죠.
그래서 26인치 싸이즈의 바퀴에 기어 변속도 가능한, 평범한 모양새의 자전거를 새로 산 거죠.
모양새는 MTB 스타일인 '유사MTB'인데 실제로 산에서 타서는 안된다는 스티커가 붙은 생활자전거입니다. | 
ALTON alobics 500 |
이전의 자전거와 달리, 새로 산 자전거는 만약 차 트렁크에 싣고 내리고자 하면 바퀴와 프레임 등을 분해하고 조립해야 했는데
제가 그런 방면으론 젬병이라서, 그럴 밖에야 차라리 집에서 한강시민공원까지 약 5km는 그냥 도로를 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ⅱ
5km 정도의 자전거도로라면 일이십분 안쪽의 '샤방샤방 라이딩'이겠지만, 일반도로 5km는 초보자인 제게 상당한 모험이었습니다.
차도는 쌩쌩 달리는 차 때문에, 인도는 자전거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행인들이 있어서 긴장을 한순간도 늦출 수 없고,
근력도 부족한데다 기어 변속도 능숙하지 않아서 오르막길은 죽도록 힘든 한편, 내리막길은 그 가속도에 무서워졌습니다.
특히 국립도서관 앞의 고갯길은 도로 주행 초보자인 저에게 한강변에서의 30∼40km보다 훨씬 힘든 코스로 여겨졌지요.
(한강변으로 다녀올 때마다 그 고갯길을 넘다보니, 이제는 도리어 고갯길 오르막의 힘겨움을 약간 즐기기까지 합니다)

up! up! | 예전에는 '마뉘꿀고개'라고 하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고개.
대법원과 국립중앙도서관 사이의 그 고갯길, 오르막에서 헉헉대고 내리막에서 긴장하던 제가
어느 일요일엔가는 양재천변의 자전거 도로로 나가 탄천을 끼고 분당까지 다녀오기도 했고
'힘들어도 한 번 올라가면 뭔가 달라진다'는 말에 혹해서 얼마 전에는 남산에까지 올라갔습니다.
자전거 탄지 이삼년된 '라이더'들의 부추김에, 끌려가듯 한편 솔깃한 마음에 오르기 시작한 남산이었는데
한남대교를 건너 국립극장까지 가서 한숨 돌린 다음 전망대를 거쳐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의 기분이란!
'초보인 나도 업힐(up hill)해봤다'고 얘기해도 부끄럽지 않을, 오르막 도전의 성공이기도 했습니다. |
높이가 해발 300m에도 못미치고 또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나있어서 '진짜' 산을 오르내리는 라이더에게는 별 것 아닌 남산이겠지만‥,
그리고 정상을 코 앞에 두고 약 20m만 더 가면 되는데 그만‥, 결국 힘에 부쳐서 페달에서 발을 내리고 '굴욕의 끌바'를 하고 말았지만,
남산에 올라가봤다는 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잖냐고 누군가 그럴지라도, 스스로에게는 작은 업그레이드라도 끝낸 듯한 느낌!
참! 자전거를 타게 되니 앞서의 '끌바'라든지 또는 '멜바'와 같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쓰는 신조어같은 용어를 접하게 되더군요.
혹시 지금 처음 접하는 신조어라 해도 아마 짐작될 듯한데, '업힐할 때 너무 힘들어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것'을 '끌바'라 하고,
'끌고 가기에도 험한 길이거나 또는 계단 등에서 자전거를 메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두고 '멜바'라고 말한다는군요. ^^;;
ⅲ
그 동안 제가 평소에 들고 다니는 가방은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노트북 컴퓨터까지 넣을 수 있는 배낭 겸용 숄더백이고 또 하나는 포트폴리오 백 느낌의 서류가방이었습니다.
패션이나 뭐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그날 그날 들고 다녀야 할 것들에 따라 바꿔서 들고 다니는 것이지요.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움직이는 월요일과 금요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어깨끈이 있는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가방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새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그렇게 되었지요.
mp3P 아이리버의 제조회사인 레인콤에서 사은품으로 나왔던 검정색 미니 배낭이 그것인데
흔히 쓰는 배낭과 비교하면 싸이즈가 다소 작긴 하지만 자전거 탈 때의 제게는 딱 맞는 싸이즈의 배낭입니다.
 | 기계 만지는 건 젬병이라 해도 도움을 받으려면 응급용 공구는 구비하고 있으라는 친구의 오랜 충고에 따라
튜브가 펑크날 때를 대비해서 필요한 펑크 패치와 육각렌치를 포함한 휴대용 공구 세트 등을 챙겨 넣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기 위한 수건 등도 넣어 다니려니 배낭이 하나 있어야겠다 싶어 메기 시작한 배낭인데
한번 메기 시작하니, 여분의 안경도 챙겨 넣어 다니고, 초코바나 양갱같은 간식(?)을 넣어다닐 때도 있습니다.
보면, 요즘은 복장도 자전거용 슈트로 갖춰 입고 신발도 클릿(cleats)슈즈로 갖춘 사람이 제법 많던데요.
저는 아무 것도 갖춘 것 없이 배낭만 메고 다녔는데, 제가 자전거로 남산에 처음 올라가던 날,
함께 갔던 지인이 보기 안쓰러웠던지 아니면 초보자 격려 차원에서인지, 자전거용 헬멧을 선물해주었습니다. |
사실, 자전거를 타고 한동안은 그런 '용품'에 대해서 저는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상시 대비를 위한 정비도구 말고는, 선수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까지 필요하나 싶었습니다.
자전거용 슈트를 비롯해서 몇몇 용품은 '괜한 허영'으로까지 여겨졌습니다.
특히 사타구니 부분에 패드가 부착된 슈트 하의는 쳐다보기도 은근히 민망스러운 '쫄바지'였구요.
그런데 자전거를 탄지 한달쯤 지나니 그것들이 각자 필요한 기능을 가진 용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군요.
저녁나절 강변을 끼고 달릴 때 자칫하면 날벌레가 입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느날 실제로 뭔지 모를 날벌레 하나가 부지불식간에 제 입 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마스크로, 두건으로, 모자로 때로는 헤어밴드로도 쓸 수 있는 버프(buff)라는 용품에 고개를 끄덕이고
허벅지에도 땀이 솟아 바지가 다리에 감겨서 페달질을 할 때마다 거치적거려 힘들게 되면
보기 민망하든 어떻든 일단 자전거 탈 동안은 편하겠다는 생각에 그 '쫄바지'를 사야겠다는 의지를 굳힙니다. |  |
그러다 어느날 지하철 안의 행상에게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데 저만 사려니 좀 그래서 머뭇거리다가) 스포츠용 토시 한벌을 삽니다.
안그래도 피부가 까만 편인데 햇볕에 타면 팔이 더 새까맣게 될 것같아서 샀는데 껴보니 3,000원이라는 가격 대비 성능 탁월!, 이네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버프를 주문하면서 실소를 하고맙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더군요. 버프는 1,900원인데 배송료는 2,500원.
사는 김에 자물쇠도 하나 삽니다. 작정하고 훔쳐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자물쇠도 소용없을테니, 그냥 휴대하기 편하게 아주 작은 것으로.
ⅳ
요즘 유행하는 '되고송'처럼 이러면 저렇게 하면 되고 하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일이 풀려간 적은, 꽤 오랫동안 없었던 듯 싶습니다.
잘 풀려가는 것은 아예 바라지도 못하고 그냥저냥 대강대강 살아지면 다행이다 하면서 지내는 것이 습관처럼 되기도 했는데,
웬걸, 도리어 지난 해부터는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 식으로 매사 막막해서 남몰래 한숨만 푹푹 내쉬기 일쑤였지요.
 | 그러다 달포 전부터인가, 꼬여가기만 하던 여러가지 것들 중 어떤 것은 슬그머니 더이상 꼬이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특별히 잘 풀려나가는 일이 생긴 것은 아니고, 어디서 예상치 않은 공돈이 들어온 것도 아닙니다.
공돈은 커녕 제가 보유한 주식은 손절매의 타이밍도 놓친지 오래인데 이달 들어 더욱 추락하고 있으니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리고 그외 여러가지 면에서도 여전히 꼬여가고있는 상태 그대로가 대부분이죠.
수치로 계산되어 보여지는 것들이 풀리긴 커녕 더 꼬여가도 (그래서 그쪽으로는 스트레스가 여전하지만)
몇몇의 어떤 사안은 '더이상 나빠질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상황이 악화된 채 가라앉은 상태에서 침체(?)가 지속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이 든 것인지
그런 생각이 '상황 악화'를 멈추게 한 것인지 또는 상황에 대한 저의 인식이 바뀐 것인지는 모르지만
돈은 못벌어도 한숨은 줄기 시작했는데 우연히도 그 시기가 제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과 맞물립니다. |
물론 자전거 타기가 '상황 악화 멈춤'에 어떤 역할을 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이상 나빠질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그게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든 체념의 마음가짐이든 자전거랑 별 상관없는 것이겠지요.
다만, '상황 악화 멈춤'이 '일시정지'의 모양새로 잠깐이 아니라 혹시 요즈음의 저에게 '악재소멸 호재만발'로 이어진다면
그리고 그런 이어짐이 가능한 이유가 제가 저의 시각, 인식, 태도를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라면
저의 그런 변화에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은 아마 요즈음의 자전거 타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슬쩍 드네요.
伸びて縮んでくうちに なんとかなるだろう 펴지고 움츠러들고 하는 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なんとかなるだろう どうにか出来るだろう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대로 잘 되겠지 |
ⅴ
연일 폭염이라고 하니 일요일이라 해도 낮시간에 자전거를 타기는 아무래도 그래서 어제는 오후 6시쯤 한강으로 나갔습니다.
압구정 쪽 한강시민공원에서 숨 좀 돌렸다가 동호대교, 성수대교, 영동대교, 청담대교, 잠실대교를 지나 성내천으로 들어선 다음
올림픽공원, 한국체육대학교를 끼고 한달음에 달려서는 오금동에 있는 어느 삼겹살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어제 함께 달린 멤버들은 모두 집이 그쪽이라서 식사를 마치고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는 혼자가 되어 코스를 바꾸어서 달렸는데요.
양재천을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 양재IC와 서초IC 구간을 왼편으로 바라보는 일방통행 오르막길을 넘어올 때 문자메세지가 왔습니다.
‥ 「나 이제 슬럼프 끝낼 거야! 지켜봐 줘.」
 | 엊그제 토요일 낮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잠깐 만나서 점심시간을 같이 했던 그 친구는
'정신줄을 놓고 다닌다'고 투덜대었는데, 요즈음 그 '정신줄'이라는 게 잘 잡히지 않던 모양입니다.
최근 그는 어디에서 그랬는지도 모른 채 손지갑을 잃어버리기까지 해서 속상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저랑은 원인도 증상도 다르긴 하지만, 그 친구도 아마 그 동안 슬럼프로 꽤나 힘들었나 봅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면서 그게 어떤 탈출구로 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슬쩍 바라고 있는데
제가 고속도로를 옆눈으로 보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을 때, 그 친구,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슬럼프를 스스로의 의지로 끝내겠다고 다짐하며 제게 지켜봐 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나 봐요. |
望まないことばかり 起こるこの頃
바라지 않는 일만 일어나는 요사이
ペダル重たいけれど ピークをめざす
페달 무겁지만 정상을 노린다 |
오랜만에 스핏츠(スピッツ)의 11번째 앨범 スーベニア(Souvenir, 기념품)를 꺼내 들어봅니다.
10번째 트랙 自転車(Jitensha, 자전거)는 평소에 즐겨 듣던 트랙은 아닙니다.
제게는 멜로디와 리듬이 동요스러운 느낌이라 그랬는데, 오늘, 노랫말을 함께 보면서 들으니 또 다르군요.
'感動のチャプターは もうちょい大事にとっておこう 감동의 장(章)은 조금만 더 소중히 간직해 두자' 라든지
'最高のイベントは まだ先にあるはず 최고의 이벤트는 아직 앞으로 다가올 날에 있을 거야' 같은 노랫말이,
가끔 접하는 '좋은 말'이나 그다지 다름없어서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 
スーベニア
● 自転車 노랫말 살펴보기 |
하지만 스스로 슬럼프를 끝내겠다면서 지켜봐달라는 그에게라면, 힘든 가운데에서도 목표를 분명히 하고 달리고 있는 그에게라면,
다가올 날에 있는 최고의 이벤트는 분명 너의 것일테니 그 날에 터질 감동을 지금은 가슴에 담아두자는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ⅵ
지난 주 수요일 독서대학 르네21에서 소설가 김훈의 강좌를 듣고 온 「사랑하는, 나의, 오랜 친구」가
저를 위해 그날의 주제 도서였던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저자 싸인을 받아 주면서 같이 들었다면 제가 좋아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강좌에서 김훈은 페달을 돌려 스스로의 동력으로 달려나가는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마치 벼락을 맞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
저는 그렇게까지야 아닙니다만, 아무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은 신나는 일입니다.
제가 자전거를 탄다고 하니, 면목동에 사는 대학 동기 녀석이 각자 자전거를 타고 나와서 서울숲에서 한번 만나자고 하더군요.
이제 막 한달 정도 넘긴 초보자라서, 저는 아직 자전거로 가보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서울숲은 물론 중랑천을 타고 그 녀석이 사는 동네를 지나 의정부 쪽으로도 달려보고 싶고
불광천이나 홍제천은 어떤지도 궁금하고 행주대교 지나 일산 방향 어느 길목에 있다는 국수집에 국수 먹으러도 갈까 싶네요!
√ 自転車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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