鈴虫を飼う Suzumushi wo Kau 방울벌레를 기른다 |
ⅰ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라는 말은, 원래 바쁜 농사일도 끝나고 추수할 일만 남아 한가해진 농촌을 두고 하는 말이긴 합니다만,
저의 이번 여름은 마치 그 표현처럼, 어정어정하다가 칠월이 그리고 건들건들하다가 팔월이 다 지나가버리는 듯 합니다.
따져보면 칠월에는 이사도 했고 팔월에는 난데없이 입원해서 수술도 치렀고 했으니 '어정건들'했던 날들은 분명 아닌데
어수선해도 이사온 집에 어느새 익숙해지고 조그만 흉터가 생긴 아랫배도 굳이 들여다 봐야 수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니
그런 큰 행사가 있었어도 이 여름을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라고 느끼나 봅니다.
가끔 엊그제 일도 깜박깜박 해서 난감할 때가 있는데, 이런 면에서는 적당한 건망증이 나쁘지마는 않습니다.
폭염이니 열대야니 하는 것도 언제였나 싶게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고 한낮에도 그늘없는 도로 위가 아니라면 견딜 만 하네요.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책읽기 가장 좋은 계절은 폭염이 오기 전 초여름이나 요즘 같은 늦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밖으로 나가면 땀에 젖지만 집 안에서는 그다지 더위를 심하게 느끼지 않은 요즈음, 이를테면 주말의 한낮.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서, 마루에 대충 엎드려서 또는 화장실에 갈 때도 들고가서 읽는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
올림픽이 끝나서 오랜만의 TV도 재미없고 인터넷 써핑도 시들해진 요즈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슬그머니 무료해지는 저녁.
그럴 때 적당한 인문과학이나 자연과학 서적 또는 오래 전부터 읽고 싶어 했으나 미뤄두기만 한 두툼한 책을 펼쳐드는 뿌듯함.
ⅱ
작년, 재작년만 해도 대학의 도서관에 드나들 일이 잦은 환경 속에 있어서,
열람실에 들려 집에서 구독하지 않는 신문을 읽거나 눈길가는 잡지를 뒤적거릴 기회도 있었고
동작도서관에도 몇 번 들려서 인터넷이 되는 3층 휴게실에서 노트북컴퓨터를 연결하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여름이 한참이었던 최근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을 향하는 발길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자격증 시험일자가 임박해서 '열공'에 지쳐 힘들어 하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는
그 녀석이 공부하고 있던 중랑구립정보도서관 앞에서 그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 도서관은 근처에 신내근린공원도 있고 봉화산으로 올라가는 길목도 가깝고 해서 그런지
초록이 무성한 도서관 인근 풍경이 너무 좋아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와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도서관에 들어가 본 지도 오래되었구나' |  |
 | 게으름 탓에 책읽기가 뜸해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해를 거듭한 지도 오래된 일인데
올해는 여름의 끝무렵에 이르러 다행스럽게도 여러 권의 책을 연거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 도서관에서 관외대출한 책들인데 특별한 주제없이 그저 서가에서 손가는대로 뽑아든 것들이었지요.
히가시노 케이고(東野圭吾) 의 추리 소설 짝사랑(片想い)이라든지 (서점에서는 눈에 띈 적이 없었는데)
평소에 일본 고전문학사 쪽으로는 제대로 가까이 가본 적도 없고 이 여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별책부록까지 챙겨서 대출해 온 550페이지짜리 일본 중고(中古)시대 문학의 대표작품이라든지.
아마도 중랑구립정보도서관 앞 풍경에서 받은 자극이 오랜만의 책읽기로 연결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
ⅲ
별 생각없이 빌려와서는 주로 마루에서 쉬엄쉬엄 읽었던 일본의 고전문학 중 하나는,
겐지이야기(源氏物語)와 함께 일본 고전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마쿠라노소시(枕草子)입니다.
천황을 보필하는 뇨보(女房:고위궁녀)인 여성이 쓴 작품으로 일본 수필문학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라는데
('마쿠라노소시'라고 하는 이 책의 제목, 이것을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베갯머리 서책' 정도 된다네요)
무겁지 않은 주제에 감상적인 면이 상당한 글이라, '고전'이라는 느낌은 거의 없이 편하게 읽어지더군요.
두툼한 두께는 '마쿠라(枕, 베개)'라는 제목처럼 한두 차례 낮잠베개가 될 만큼 적당하기도 했습니다. ^^ |  |
고유명사와 옛일본의 관직명 등이 낯설게 등장하는 궁중생활을 묘사한 부분은 가끔 건너뛰기도 하면서 대충대충 읽은 책이지만
저자가 초고(草稿)를 완성한 때가 1001년이라고 하니 지금부터 무려 천년도 넘는 옛날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천년 전 이웃나라 여성이 썼다는 것이 어느새 잊게 되는 글이 많아서, 책장을 덮고난 울림이 은근히 남다른 '고전'입니다.
예를 들어, 천년 전 이웃나라 여성이 묘사한 어느 7월 여름날의 느낌을 읽으면, 어쩌면 이렇게나 지금과 똑같을까 싶더라구요.
천년 쯤 지난 후의 바다 건너편 나라에서 사는 사람이 주말이면 비오던 어느 해의 여름날에 느끼는 분위기랑 말이지요.
7월 더운 때 바람이 세게 불어 빗발이 어지럽게 날리는 날, 몹시도 시원해서 부채를 까맣게 잊고, 땀내가 조금 밴 면옷을 푹 뒤집어쓰고 낮잠 자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 마쿠라노소시(枕草子) 중에서 제41단(段) 극락이 따로 없다
지은이 세이쇼나곤(清少納言). 옮긴이 정순분. 펴낸곳 갑인공방.
일본어 원문
七月ばかりに、風のいたう吹き、雨などのさわがしき日、大かたいと涼しければ、扇もうち忘れたるに、汗の香少しかかへたる衣の薄き引きかづきて、晝寢したるこそをかしけれ。 |
출처 : http://www.geocities.jp/rikwhi/nyumon/az/makuranosousi_zen.html |  |
ⅳ
앞서 인용한 부분을 옮겨 쓰느라 책을 펼쳐서 뒤적이니 그 제41단의 바로 앞, 제40단이 눈에 들어오는데
옮긴 이가 운치 있는 벌레라는 제목을 붙인 그 글에서는 여러가지 벌레들이 등장합니다.
저자가 손꼽는 벌레 중에는 '방울벌레(鈴虫)'도 있네요.
끝나가고 있는 여름의, 지난 여름의 느낌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었는데
나도 몰래 '방울벌레(鈴虫)' 덕분에 가을의 느낌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구월이고 이십사절기로 하자면 입추(立秋), 처서(處暑)도 벌써 다 지나갔으니
아직 반팔 차림으로 다니고 목덜미에 땀이 나도 우리는 이미 가을에 들어와 있는지 모릅니다. |  |

名前をつけてやる | 그래서, 이 글을 쓰다 멈추고는 잊고 지내던 노래 하나를 찾아 듣습니다.
스핏츠(スピッツ)의 옛노래 鈴虫を飼う(Suzumushi wo Kau, 방울벌레를 기른다)를.
鈴虫の夜 ゆめうつつの部屋 방울벌레 우는 밤 꿈결 같은 방
鈴虫の夜 一人きりゆめうつつの部屋 방울벌레 우는 밤 혼자뿐인 꿈결 같은 방 |
● 鈴虫を飼う 노랫말 살펴보기 |
ⅴ
올 여름을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기억하면서 읽어도 그만 읽지 않아도 그만인 책을 짬짬이 읽던 제가 있는가 하면,
앞서 얘기한 친구처럼 올 여름을 강의실에서 도서관에서 방안에서 밤늦도록 '열공'의 시간으로 보낸 친구들도 있습니다.
봄이든 여름이든 계절의 바뀜에 상관없이 치열하게 '열공'하고있는 또다른 친구가 얼마 전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지는 게 무서워' ‥라고.
진학이거나 취업이거나 우리가 무언가를 목표로 두고 매진할 때 그 노력의 결실이 한 해를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사계절을 가진 우리네는 보통의 경우 그 마지막 계절인 겨울에 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땀흘리며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다가 어느날 문득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고 무서워졌다는 그 친구.
이제는 '닥치고 열공!' 해야하는 나날 중에서 남은 날들이 보낸 날보다 적다는 것에서 오는 조바심을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중랑구립정보도서관의 그 친구, 선선해지는 게 무섭다는 그 친구, 지난 겨울부터 그들이 보낸 것과 같은 봄 여름을 보낸 사람들 모두,
다가오는 올 가을과 겨울에도, 지난 계절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달리면' 올 겨울의 끝자락에는, 원하는 결실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힘들어도 무서워도‥ 참고 조금만 더 달리면 될 겁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모두 힘내십시오.
ⅵ
● 스핏츠 팬들을 위한 덧붙임 하나.
스핏츠의 노래는 노랫말은 물론 멜로디까지 보컬리스트 쿠사노 마사무네(草野マサムネ)가 만든 것이 대부분인데요.
이 곡의 노랫말은 쿠사노 마사무네가 만들었지만 멜로디는 그가 만든 곡이 아닌,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鈴虫を飼う(Suzumushi wo Kau, 방울벌레를 기른다)를 작곡한 사람은 기타리스트 미와 테츠야(三輪徹也)입니다.
● 미와 테츠야가 멜로디를 만든 곡의 목록이 있는, 또다른 myspitz story .. 바로가기
√ 鈴虫を飼う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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