猫になりたい Neko ni Naritai 고양이가 되고 싶어 |
ⅰ : 100만 번 산 고양이
제 경우 신간 도서에 대한 정보는 주로 일간신문의 서평을 통해서 얻게 되는데
구미가 당긴다 싶으면 일단 인터넷 서점의 '보관함' 또는 '마이리스트'에 담아둡니다.
하지만 그렇게 챙겨본들, 구매를 위한 클릭으로는 거의 연결되지 않고
인터넷 서점 사이트의 어느 한 구석에서 장기 휴면 상태의 데이타로만 남아 잊혀져 갑니다.
그렇지 않아도 책을 가까이 하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확 줄어들었는데
책 읽기는 고사하고 관심조차도 그렇게 잠깐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로 끝나고 마는 거죠.
어쩌다 책을 손에 쥐긴 해도 대체로 도서관 스티커가 붙은 책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인터넷 서점의 보관 목록을 들추어보고는 혼자 피식 웃게 됩니다.
관심이 구매로 연결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주저앉아 버린 것들의 목록이란···.
훑어보니 의외로 경제학 관련이라든지 '실용'적인 분야의 서적이 많이 있고
그 중에는 지금은 시의성(時宜性)을 잃었거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진 것도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은 책들을 떠올려도 엇비슷한 느낌의 헛웃음이 나옵니다.
도서관의 서가에는 '000총류'부터 '900역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책들이 다 있는데도
제가 훑어보는 서가는 주로 '800문학' 쪽이고 뽑아드는 책들은 거의 모두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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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심 영역이라는 게 알고보면 어지간히도 좁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되는 장면입니다.
눈길이 갔을 정도에 머물렀을 뿐 아직 사서 읽지 않은 탓에 '관심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곤란한 분야의 책이라든지
읽었다고는 해도 전문적인 관심이나 남다른 필요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그저 여가를 즐기는 방편으로 읽은 소설뿐이니.
최근에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어떤 것이냐에 따라 부담스러운 것도 있는 게 선물인데, 저한테 책은 늘 좋은 느낌의 선물입니다.
더구나 특별한 날도 아닌데, 그냥 주고 싶어서 제게 선물한다는 책이라서 더욱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사노 요코(佐野洋子)의 그림 동화 『100만 번 산 고양이(100万回生きたねこ)』, 비룡소 간행.
특별히 제게 그 책을 주고 싶었다는 깊은 뜻을 알 듯 말 듯 하기도 했지만
그가 '동화'라는 조금은 특별한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마음 속으로 조금 놀랍기도 했습니다.
한편 사람들의 관심 분야는 제각각이라는 당연한 사실과 제 경우 그것의 협소함을 새삼 느끼기도 했구요. | 
100万回生きたねこ |
30쪽 정도의 분량이라 일독하는 것은 금방입니다만, 그렇게 한 번 보고 바로 덮어지지 않는 것이 또 동화책입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얼룩무늬 고양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백만 명의 사람들이 울었지만 정작 스스로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고양이.
도둑고양이가 되면서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얼룩 고양이.
그런 그를 좋아하지 않는 하얀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얼룩무늬 고양이.
그제서야 기쁜 일과 슬픈 일을 알게 되고 겪게 되는 얼룩무늬 도둑 고양이.
새끼 고양이들도 생기고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 오래 살고 싶었지만···
하얀 고양이는 죽고 밤낮으로 백만 번이나 울던 그도 결국 죽고 "그리고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는 고양이.
특정 텍스트를 읽고 느끼는 감동은 제각각이겠지만 넓은 범주에서 보자면 엇비슷하게 공통으로 느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위 지문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다음 중 어느 것이냐'라는 문제가
중고교 국어 시험에 나올 수 있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그 텍스트에 있기 때문일테지요.
아마도 동화의 경우는 다른 장르의 책보다는 그러한 공통의 느낌이 상대적으로 많은 텍스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시절만 벗어나면 굳이 눈길을 주지 않는 장르의 책이 되어버리는지도 모르지요.
뻔한 전개와 당연히 짐작되는 결말이라든지 권선징악 등 교훈적인 주제 등으로 인해서 말입니다.
사노 요코가 글과 그림을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주목하고 되풀이해서 읽은 부분은, 이 동화의 핵심 '주제'가 묘사된 대목은 분명히 아닌, 16쪽의 글과 17쪽의 그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뭐, 요즘 인기있다는 네이버 웹툰 『실질객관동화』처럼 동화를 읽었다는 것은 아니구요, 후훗.)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습니다.
도둑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쨌든 고양이는 멋진 얼룩 고양이였으므로, 멋진 얼룩무늬 도둑고양이가 되었습니다.
∼ 사노 요코의 그림 동화 『100만 번 산 고양이』 중 16쪽. | 
17쪽 |
얼룩 고양이가 진정한 사랑, 기쁨 등을 알게 되는 것은 하얀 고양이를 만나서 함께 한 이후가 되겠지요.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진정한 사랑이나 기쁨 등의 감정은 그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감정 자체는 특별한 것이지만 누구라도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은 될 수 있는, 그러니까 크게 남다를 것 없는.
제가 주목하고 되풀이해서 읽던 16쪽의 글(단 네 줄의 다섯 문장)과 17쪽의 그림을 통해 제가 떠올린 것은
'자긍심(自矜心)' 그리고 '자중자애(自重自愛)'라는 두 단어였는데요.
동화에서는 이 장면이 자기 자신만을 좋아하고 타자(他者)를 사랑할 줄 모르는 단계의 장면으로 묘사되는데
거기서 저는, 그 대목에서 작가의 의도야 어떻든, 이런 생각이 든 겁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자기만의, 멋진 얼룩무늬 도둑고양이와는 달리
···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지는 마음'인 자긍심(自矜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 '자신을 소중히 하고 제 몸을 스스로 아낀다'는 자중자애(自重自愛)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쳐흘러 주위로부터 왕자병, 공주병이라는 수군거림을 듣는 사람이거나
가만히 있어도 시쳇말로 '엄친아' 또는 '엄친딸'로 대접받는 사람에게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겠지만,
이십대 청춘의 친구들에게서 문득문득 이런 느낌을 받아서 괜히 제 마음이 묵직해질 때가 있습니다.
"왜 스스로의 가능성을 애써 무시하고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걸까?"
철든 이후 스스로든 남보기에든 그럴싸한 성과를 단 한 번도 거두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몇 번 도전해봤지만 좌절만 맛본 탓에 두려워서 이젠 문고리를 잡았다 놓았다만 반복할 수도 있구요. |
 | 그런 청춘과는 약간 다르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모습의 청춘도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스스로도 대견한 결과를 도출해낸 적이 있어 어깨 펴고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거기까지 오는데 너무 힘들었기에 잠시 쉰다는 것이 그만, 그 당장의 달콤함에 오랫동안 취해버린 바람에,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앉아 잠든 동안 자긍심이 녹슬어 가고 있는 것을 아마 느끼지 못하는 듯한··· 청춘.
절차탁마(切磋琢磨),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는 말처럼
배우고 갈고 닦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자긍심도 자긍심답고 자중자애의 마음가짐도 의미가 있을진대. |
도전다운 도전을 해본 적이 없어서 막상 뭔가 해보려니 자신없다는 생각만 드는지.
열려고 들 때마다 잠긴 채 열리지 않는 대문만을 겪은 탓에 지금 문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지.
쉼과 멈춤의 편안함에 저도 몰래 익숙해져서··· 어딘가 무뎌져가는 듯한 느낌이 혹시 들지 않는지.
얼마 전 제가 선물로 받았던 동화책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처음에는 평소 제 관심 영역이 얼마나 좁은지를 한 번 더 일깨워주더니
두어 차례 읽고난 후에는 '자긍심'과 '자중자애'라는 표현과 함께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백만 번이나 '그냥' 사는 것보다, 그래, 그런 것 말고.
먼저 또는 다시 한 번 더, 그 어느 날의 "멋진 얼룩무늬 도둑고양이"처럼 살기를. |  |
ⅱ : 고양이가 되고 싶어
사노 요코의 그림 동화 『100만 번 산 고양이』와는 아무 상관없는 노래이긴 한데,
덧붙이는 노래는 스핏츠(スピッツ)의 猫になりたい(Neko ni Naritai, 고양이가 되고 싶어)입니다.
The Great Jamboree '97 みちのく夕焼け兄弟 (더 그레이트 잼보리 '97 미치노쿠 저녁놀 형제).
1997년 8월 24일, 스핏츠는 이와테(岩手)현 코이와이(小岩井)농장 특설회장에서
위와 같은 타이틀의 야외 공연을 치렀는데, 그날 연주된 곡은 앵콜 포함 모두 스물두 곡이었다고 합니다.
앵콜 곡을 제외한 그날의 세트 리스트 마지막 곡이 지금 라이브 버전으로 듣는 바로 이 곡입니다. | 
ジャンボリー 2 |
이 라이브 버전은 1999년 4월 7일 발매 비디오 ジャンボリー(Jamboree 2, 잼보리 2)에 수록되었다가
2001년 6월 6일 발매 DVD ジャンボリー・デラックス(Jamboree DeLuxe, 잼보리 디럭스)에 재수록됩니다.
● YouTube에 있는 猫になりたい 라이브 영상 보기
참고로, 1994년에 녹음된 원곡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던 사람은 후지이 리오(藤井理央)라는 뮤지션인데
1997년의 라이브에서는 아카시 토시코(明石敏子)라는 뮤지션이 백그라운드 보컬과 키보드를 연주합니다.
이 뮤지션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스핏츠의 공연에서 키보드 서포터로 활동했다고 하네요. | 
ジャンボリー・デラックス |
● 猫になりたい 노랫말 살펴보기
● 오래된 글이긴 하지만, 또다른 猫になりたい myspitz story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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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책 선물, 고맙습니다.
√ 猫になりたい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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