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구월의 첫 번째 일요일.
중앙선 열차에 자전거를 싣고 팔당까지 가서는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구월이 되었는데도 샌들 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만큼 발등을 태워버리는 폭염은
팔당대교를 건너고 미사리조정경기장를 거쳐 하남의 경계를 넘을 때까지 계속되더니
암사동선사주거지를 지나쳤을 즈음부터는 느닷없이 내리퍼붓는 폭우로 변했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겨를도 없이 안장 위에서 이미 다 젖어버린 우리는
예상치 않은 상황을 도리어 즐거워 하며 그렇게 반포대교까지 달렸다. |  |
하남 어딘가의 고갯길에서 업힐을 마친 후에 잠깐의 숨돌리기.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탈 때면 언제나 그러듯이 편의점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
당분간은 기약이 없지만, 언젠가 의정부까지 달려서 부대찌개를 먹자는 약속.
굳이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경험은 평소에 다른 운동을 통해서도 할 수 있고
야외에서 먹는 컵라면도 그게 그저 '맛'을 두고 하는 이야기 만은 아님을 누구라도 알테고
그리고 차를 타고 가서 먹든 자전거를 타고 가서 먹든 본바닥 부대찌개 고유의 맛은 변함없겠지만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숨돌리기, 컵라면, 다음 코스의 약속 등은 약간 다르고 조금 특별하다.
ⅱ
이달 말에 발매될 스핏츠(スピッツ)의 새 싱글을 두고
자동차 타이어 광고에 타이업된다든지 인터뷰 기사가 어느 음악 잡지에 났다든지 하는,
국내의 팬들이 스핏츠의 팬 카페 게시판에 쓴 글을 읽을 때나
늦은 밤 메신저로 마주치는 팬들 중 한 사람과 기대감에 달뜬 대화를 나눌 때나
문자메세지로 스핏츠의 어떤 노래를 연주하고 싶냐고 묻고 답할 때
나는 모니터를 마주하고서 그리고 휴대폰의 작은 화면을 내려다보면서 방긋 미소 짓게 된다.
카피 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노래 하나 정도는 완벽하게 연주하고 싶다든가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현지에서의 공연을 볼 거라든가
내 경우 이번 싱글의 타이틀 곡보다도 커플링 곡에 더 기대가 크다든지. | 
2010-09-29
シロクマ/ビギナー |
직접 연주를 해본다든지 공연을 보러 일본에 간다든지 하는 게 말처럼 쉽사리 해낼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고
수록곡에 관한 관심 역시 팬들에게 국한된 것일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 귀로 훌려들어도 상관없는 화제에 불과하지만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부러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고 두근거림이 서로 전해지는 소망이기도 하다.
ⅲ
인간에 대한 애착, 다시 말해서 특정한 타인에게 끌리는 감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사랑, 우정, 연대감, 동료의식, 공감 등이 그런 것들이다.
눈을 뜨고 새날을 맞이해도 달라진 건 없고 대문 나서면 배신의 연속인 나날 속에서
누군가에게 끌린다는 이 긍정적인 감정은
'그래도 살아갈 만 하다'고 우리가 힘낼 수 있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것들,
그러니까 나와 함께 달렸던 두 사람의 '라이더'들과 나누는 교감과
스핏츠의 팬들인 '스핏처(Spitzer)'들끼리 공유하는 감정은
바로 그 누군가를 향한 긍정적인 감정 중의 하나인 연대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들에게는 사소한 것이겠지만 동호인들에게는 지루하고 힘든 일상에 힘을 주는 무엇. |  |
 | 이런 연대감은 취미나 취향이 같은 동호인들끼리 함께 활동하면서 생기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느날 검색을 통해서 우연히 마주치는 글을 통해서 어느 이름 모를 블로거에게도 느낄 수 있다.
또는 이미 그런 감정들 중 하나인 우정을 나누고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연대감이 추가되기도 한다.
언젠가 친구를 찾아갔을 때 그가 잠시 전화를 받는 사이 그의 서재를 물끄러미 훑어보다가
그레이엄 핸콕(Graham Hancock)의 신의 지문(Fingerprints of the Gods)을 발견했을 때
마음 속으로 '이 친구도 역사 이전의 문명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네!' 하면서 빙긋 웃었던 적이 있다.
그동안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 뻔 했던 친구의 여러 취향 중 하나에서
뒤늦게 공통점을 또 하나 발견하는 기쁨, 추가되는 공통분모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연대감.
이렇듯 누군가에게 끌린다는 감정은 우정과 연대감이 여러 겹으로 겹쳐지는 경우도 있다. |
ⅳ
2007년에 제6회「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このミステリーがすごい!)」의 대상을 수상했다는 추리소설,
타쿠미 츠카사(拓未司)의 『금단의 팬더(禁断のパンダ)』를 읽다보면
등장인물 두 명이 스핏츠의 음악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갑자기 가게 안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흘렀다. 소리의 근원지가 아오야마(青山)였기에 그것이 그의 휴대전화 벨소리임을 바로 알았다. 코타(幸太)는 놀랐다. 아오야마가 설정해놓은 착신 멜로디가 자신의 것과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저, 그거······."
코타는 아오야마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스피츠(スピッツ) 밴드의 <아득히>로군요. 내 거랑 똑같네요."
"진짜?"
"아오야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야, 자네하곤 잘 통하겠는걸? 센스 있는 친구야."
∼ 타쿠미 츠카사의 소설 『금단의 팬더』 중에서. | 
禁断のパンダ |
내 마음대로의 짐작에 불과하지만, 이 소설가는 분명 스핏츠의 음악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대중음악에 관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었거나
미지의 독자들 중에서 스핏츠를 매개로 한 연대감울 끌어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 인물도 '잘 통하겠'다고, '센스' 있다고 하면서 이미 그들끼리 연대감이 생긴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ⅴ
다음 달 말에 홍대 근처의 클럽에서 스핏츠 카피 밴드의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월이면 우리나라에 팬 카페가 생긴 지 10주년이 된다고 해서 급히 준비하고 있는 공연이라고 한다.
카피 밴드의 공연인데다가 연주자들 대부분이 생업을 따로 가지고 있는 아마추어 연주자일테니
(연주자와의 개인적인 친분만으로 온 관객이 아니라면)
그날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사람들은 아마 거의 모두 스핏츠 팬 카페의 회원들일 것이다.
즉, 밴드 멤버와 관객들 모두 앞서 몇 차례 이야기한 그 연대감으로 모일 거라는 얘기다. |  |
더구나 그 즈음이면 스핏츠의 새로운 정규 앨범도 막 발매되어 있을 시점이니 (10월 27일 발매 예정)
새 앨범에, 팬 카페 10주년에, 카피 밴드의 공연에,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팬들끼리 늦게까지 이어질 뒷풀이에,
그날 '스핏처'들이 서로 느낄 연대감은 평소보다 더 커질 것이다.
ⅵ
자전거를 타고 빗길을 달리면서,
좋아하는 밴드의 새로운 싱글 발매를 기다리다가,
어느 날 친구의 서재 앞에서 문득,
스핏츠가 언급된다는 말에 일부러 찾아서 읽었던 소설 속에서,
공연 후 같은 취향의 사람들과 뒷풀이 중에,
그렇게 사소한 듯한 일상 속에서 취향을 함께 한다는 것을 재확인하거나 또는 공통의 관심 영역을 발견할 때
기분이 상쾌해지는 교감과 그(들)에게 더 끌리게 되는 공감에서 시작되는 연대감은 더욱 넓고 깊게 커질 것이다.
···
조금 더 생각해보면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 말고도 많다.
그런 긍정적인 감정을 때떄로 느낄 수 있어서 그 덕분에 '그래도 살아갈 만 하다'고 힘내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 구월의 두 번째 일요일.
간밤에 비도 많이 온데다가 먹구름이 가득해서 또 쏟아질 것 같아서 집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얼마 있지 않아 구름의 색깔도 밝아지고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길래 한강으로 나갔다.
그런데 지난밤의 강우량이 상당했는지 한강 자전거도로의 군데군데가 물에 잠겨 있는 바람에
이번에는 지난주와 반대쪽인 방화대교 정도까지 한강 남쪽을 달려보려던 애초의 생각은 접고
강변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마치 광합성 작용을 하는 녹색식물처럼 오랜만의 햇볕을 느긋하게 즐겼다.
그러던 중 문자메세지 하나를 받았는데 우연하게도 한강변에 나오기 전에 쓰고 있던,
바로 이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라서 살짝 놀랐다.
"스피츠만있으면세상은대강헤쳐나갈만한거같아요♡". |
ⅶ
● 遥か(Haruka, 아득한) 노랫말, 열기
遥か ∼ スピッツ
夏の色に憧れてた フツウの毎日
流されたり 逆らったり 続く細ぃ道
君と巡り会って もう一度サナギになった
嘘と本当の狭間で 消えかけた僕が
思い出からツギハギした 悲しいダイアリー
カギもかけず 旅立つのは 少し怖いけど
丘の上に立って 大きく風を吸い込んで
今 心から言えるよ ニオイそうな I love you
すぐに飛べそうな気がした背中
夢から醒めない翼
時の余白 塗り潰した あくびの後で
「幸せ」とか 野暮な言葉 胸に抱いたままで
崩れそうな未来を 裸足で駆け抜けるような
そんな裏ワザもないけど 明日にはきっと・・・
僕らそれぞれ 仰ぎ見る空
夢から醒めない翼
飛べそうな気がした背中
夢から醒めない翼
それぞれ 仰ぎ見る空
夢から醒めない翼
遠い 遠い 遥かな場所へ
作詞・作曲 ∶ 草野正宗 | 아득한 ∼ 스핏츠
여름의 빛깔을 동경하고 있었던 평범한 매일
흘려지기도 하고 거슬러 나가기도 하고 계속되는 좁은 길
너와 우연히 만나 한 번 더 번데기가 되었던
거짓말과 진실의 틈새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내가
추억으로부터 이어붙인 슬픈 다이어리
열쇠도 채우지 않고 여행을 나서는 것은 조금 무섭지만
언덕 위에 서서 크게 바람을 들이쉬고
지금 마음으로부터 말할 수 있지 향기가 날 듯한 아이 러브 유
곧바로 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 등짝
꿈으로부터 깨지 않는 날개
시간의 여백 전부 칠했다 하품한 후에
「행복」이라든가 세상물정에 어두운 말 가슴에 안은 채로
무너질 듯한 미래를 맨발로 달려 빠져나갈 듯한
그런 비법도 없지만 내일에는 꼭 ···
우리 각자 올려다보는 하늘
꿈으로부터 깨지 않는 날개
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 등짝
꿈으로부터 깨지 않는 날개
각자 올려다보는 하늘
꿈으로부터 깨지 않는 날개
멀고 먼 아득한 곳으로
작사·작곡 ∶ 쿠사노 마사무네 |
● 遥か 노랫말 (후리가나 표기) 살펴보기
● 스핏츠 팬을 위한 덧붙임, 열기
오래 전에 遥か(Haruka, 아득한) 이 노래를 가지고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싱글 버전을 첨부해서 썼던 글이고 이번 글은 遥か(Haruka, 아득한) album mix.
'앨범 믹스'는 10번째 정규 앨범 三日月ロック(Mikazuki Rock, 초승달 록)에 수록되어 있는데
싱글, 앨범 각각의 부클릿을 보면 기타리스트 미와 테츠야(三輪テツヤ) 부분이 서로 약간 다르다.
싱글과 달리 앨범에는 추가로 "additional guitar in 2002"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아마도 앨범 작업을 하면서 기타 사운드를 하나 더 입힌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 어떻게 기타 사운드가 추가되는지는 모르겠다) | 
2002-09-11
三日月ロック |
싱글 버전과 '앨범 믹스' 버전은 그 상이한 부분이 곧바로 구분될 정도가 아니라서
번갈아가며 몇 차례 거듭해서 들어봐도 알쏭달쏭할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
내가 '막귀'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럴 밖에야 굳이 다른 버전을 만드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은 앨범이 나왔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한데
혹시 그 미묘한 차이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꽤 오래 전에 遥か(Haruka, 아득한) 싱글 버전을 BGM으로 해서 썼던 글의 마지막 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 싱글 버전의, 또다른 遥か myspitz story ··· 바로가기
√ 遥か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