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지난 주 금요일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지냈던 친구들을 만나서 밤늦도록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연초라서 모임 장소로 가던 지하철 안에서는 신년회에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불판 위의 고기가 가장자리로 옮겨질 즈음에는 마치 연말의 송년회 분위기 같아졌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감과 각오가 엿보이는 대화는 그다지 나오지 않았고
지난해는 또 얼마나 힘들었던가, 어쨌든 살아남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더 많았으니.
광고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는 지난해에 몇달이나 애썼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완결 직후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다행히 수습은 했지만)
아마도 회사를 관둬야 할 지도 모르겠다고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내부 감사 이후 징계를 받는 것으로 정리되었다고 홀가분하게 말했지만
문제가 생기고 그걸 수습하고 그러는 몇달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았다.
공연 관련 일을 하는 친구는 지난해 상반기 내내 수입이 아예 없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울적한 얘기라서 그저 듣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반년 동안이나 그랬다니···.
지난해 우리들의 버팀목은 결국 마이너스 통장이었던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  |
꽃등심으로 입이 호사를 누리고 다들 노래도 부르지 않을 거면서 노래방 술집까지 갔던 그날.
한 친구는 대리 운전으로, 서울시 경계를 넘어가야 하는 친구는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강변역까지 택시를,
그리고 나는 빈차라고는 모범택시 밖에 없는 도로 변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일반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ⅱ
텔로니어스 멍크는 내가 가장 경애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데, "당신의 연주는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울리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했다.
"새로운 음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It can't be any new note. When you look at the keyboard, all the notes are there already. But if you mean a note enough, it will sound different. You got to pick the notes you really mean!)"
소설을 쓰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그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드넓은 미지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비옥한 대지가 개척을 기다리고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村上春樹 雑文集)』 중에서. | 
村上春樹 雑文集 |
재즈는 취향이 아니라서 구입한 음반도 많지 않고 적극적으로 듣고자 애쓰지도 않는다.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us Monk)의 경우, 음반이 딱 한 장만 있어서
몽크에 대해서는 '몽크'를 그저 재즈 뮤지션의 이름으로서만 아는 정도일 뿐인데
지난 연말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에서 언급된 몽크에 대한 짧은 이야기는
왠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하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마음가짐이라고는 해도 내 수준에 맞지 않게 도덕이나 윤리처럼 '가치 있는' 것은 아니고
올해 말 쯤 되어서 한해를 돌아볼 때 '후회가 적고 반성을 덜 해도' 될 만큼의 마음가짐이랄까,
그런 정도의 마음가짐인데··· 뭐 어쨌거나. | 
1963 in Japan |
하루하루의 일상은 자칫 무미건조한 것으로 느껴지기 쉬운데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실제로 그러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예사롭게 흘러만 가는 일상에 가끔은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떤 경우에 어떤 의미와 울림을 말하는 거냐고 질문을 받게 된다면
당장은 대답이 궁색해서 우물쭈물할테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읽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덤으로 먼지 앉은 몽크의 음반도 백만년만에 꺼내서 듣게 된 것도 좋았고.
ⅲ
探検隊 ∼ スピッツ
名前すら無いような 濁った小川に
浮かべたイカダに乗って
僕らはただ行く すべて謎だらけ
昨日の記憶さえ捨てて
心をひとつにし 掟を蹴り破れ
果ての果てを目ざせ
巨大な街の地下 抜ければ青い海
役割に縛られず
竜巻、雷、群れをなす虫に
血を吸われることもある
心をひとつにし ザラつく星に触われ
果ての果てを目ざせ
あゝ いつかピカプカのわけが 見えてくる
あゝ 必(かなら)ずこんな僕らにも 見えてくる
心をひとつにし 掟を蹴り破れ
果ての果てを目ざせ
心をひとつにし ザラつく星に触われ
果ての果てを目ざせ
作詞・作曲 : 草野正宗 | 탐험대 ∼ 스핏츠
이름마저 없을 것 같은 탁해진 시냇물에
띄운 뗏목을 타고
우리는 그냥 간다 모두가 의문투성이
어제의 기억조차 버리고
마음을 하나로 하고 규정을 차 부수어라
끝의 끝을 목표로 해라
거대한 거리의 지하 빠져나가면 푸른 바다
역할에 얽매이지 말고
회오리바람, 천둥, 떼를 짓는 벌레에게
피를 빨릴 일도 있다
마음을 하나로 하고 까슬까슬한 별을 만져라
끝의 끝을 목표로 해라
아아 언젠가 피카푸카의 의미가 보여올 거야
아아 반드시 이런 우리에게도 보여올 거야
마음을 하나로 하고 규정을 차 부수어라
끝의 끝을 목표로 해라
마음을 하나로 하고 까슬까슬한 별을 만져라
끝의 끝을 목표로 해라
작사·작곡 : 쿠사노 마사무네 | 
2010-10-22
とげまる
track 02
探検隊 |
2010년 10월에 발매된 스핏츠(スピッツ)의 13번째 정규 앨범 とげまる(Togemaru, 뾰족동글).
14곡의 수록곡 중에서 探検隊(Tankentai, 탐험대)는 개인적으로 선호도가 떨어지는 곡이라서
다른 곡에 비해서는 잘 듣지 않다가 지난 연말과 올해 초에 이르러서야 자주 듣게 된 노래다.
그 계기는 두 가지다.
그 첫번째는 뒤늦게 이 노래의 노랫말을 제대로 접하게 되어서다.
나는 스핏츠의 노랫말(우리말 해석)을 (c) spitzHAUS에 기댈 때가 많은데
국내 스핏츠 팬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곳에 이 앨범 노랫말이
(앨범 발매일자로부터 일 년도 훨씬 넘게 지난) 지난해 십이월이 되어서야 올라왔다.
두번째 계기는 지난 연말에 발매된 스핏츠의 공연 DVD에 이 곡이 수록되어 있어서다.
평소에 놓치고 있었거나 방치해둔(?) 노래를 영상으로 감상하고 난 다음에야 새롭게 주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노래, 스핏츠의 探検隊(Tankentai, 탐험대)도 그런 경우 중 하나다.
 | 2012년 들어 첫 포스팅 글을 쓰면서 듣고 있어서 그런지 이 노래가 조금 각별해진다.
일본어 노랫말로는 드물게 명령문 형태의 문장이 여러 차례 나와서
마치 스핏츠가 나를 향해 '신년의 각오'를 다지라고 힘주어 노래하는 것 같아서다.
心をひとつにし 掟を蹴り破れ
果ての果てを目ざせ
心をひとつにし ザラつく星に触われ
果ての果てを目ざせ |
마음을 하나로 하고 규정을 차 부수어라
끝의 끝을 목표로 해라
마음을 하나로 하고 까슬까슬한 별을 만져라
끝의 끝을 목표로 해라 |
|
'규정을 차 부수'는 수준까지는 언감생심 바라지 않고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올해 말에 가서 2012년을 돌아볼 때
'그래, 한두 가지 정도 반성할 필요가 있을 뿐 전체적으로 보면 그다지 후회 없고 이만하면 선방했다'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가짐을 2012년 내내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2012년 신정을 지나고 임진년 설날을 앞둔 지금의 각오라면 각오다.
ⅳ
● 스핏츠 팬을 위한 덧붙임, 열기
스핏츠의 앨범 とげまる(Togemaru, 뾰족동글) 부클릿에 따르면 이 곡과 관련하여 이렇게 나와 있다.
小名川高弘 誠屋
豊田泰孝 誠屋 | programming synthesizer on 「探検隊」
manipulation on 「探検隊」 |
코나가와 타카히로(小名川高弘)는 1979년 생의 기타리스트로
다른 뮤지션의 서포트 멤버로는 베이스와 드럼도 연주하는 걸 보면 다재다능한 뮤지션인 것 같다.
지금은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데 스핏츠의 레코딩에 참여한 인연은
밴드 시절의 그가 당시 프로듀서로 영입한 적이 있던 카메다 세이지(亀田誠治)에게서 비롯된 듯 싶다.
그의 이름 뒤에 약간 작은 글씨로 병기된 '마코토야(誠屋)'는 카메다 세이지의 공식 웹사이트 이름이다.
웹 검색이 어려운 토요타 야스타카(豊田泰孝)라는 인물의 이름 뒤에도 '마코토야'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두 사람 모두 스핏츠의 앨범 작업에는 카메다 세이지의 사무소 소속으로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  |
√ 探検隊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스트리밍되고 있는 음악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