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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 말했던가 私、いつ 君を 愛すると言ったんだろうか |
1999년 9월 어느날 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 중 한 분을 떠나보냈습니다.
갑작스레 세상을 뜬 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문상도 여러번 다녔지만
그토록 가까운 분을 떠나보낸 적은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저에게 있어 그 때가 철들고 처음이었습니다. .. |

Piano | 그해 가을 제가 구입했던 CD 중 하나인 Yanni의 편집 앨범 Piano는,
마음이 스산해질 때면 찾아가던, 그 분의 묘소를 향한 국도 위에서 물론
그해 가을과 겨울을 지나 이듬 해 늦은 봄이 되어서도 차 안에서 홀로 있을 때면
제 차 CD 플레이어에 자주 로딩되던 음반이었습니다.
1987년에서 1993년 사이에 발표된 곡 중에서 뽑은 12곡이 수록된 편집 앨범이었지만
First Touch 그리고 So Long My Friend, 두 곡만 계속 반복해서 들었더랬습니다. |
그 당시 홀로 그 두 곡을, 특히 그 중에서 So Long My Friend를 듣고있노라면
그 분이 제 곁에 계실 때 그다지 살갑게 대해드리지도 못했던 것이 뒤늦게 죄송스러웠고
그 분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이 느껴지고 그 분의 등이 작아보이기 시작했을 때
가끔이라도 곁에서 함께 있어드리지못한 것이 떠올라 마음 아팠습니다.
제 나이가 한살 두살 더 먹어가고 또 나름대로 세상에 발 디디고 살아가면서
그 분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면서 까맣게 잊고지내던 것,
제게 '현실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그 분이라는 것을
그분이 떠난 다음에야 새삼 깨닫고 때늦은 감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  |
한동안 제 차 CD 플레이어에 자주 로딩되던 그 음반, Yanni의 Piano는 이제 더이상 그만큼 자주 듣지는 않습니다.
그 분을 추억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려오지만 남은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야할 세월도 있기에,
떠난 사람을 추억하는 아픔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옅어져 그 때 만큼의 아픔은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
さよなら 君の声を 抱いて步いていく
이젠 안녕 너의 목소리를 안고서 걸어가네
ああ 僕のままで どこまで屆くだろう
아아 나인채로 어디까지 닿을 것인가 |
깊은 밤 스핏츠(スピッツ)의 8번째 앨범 フェイクファ―(Fake Fur, 페이크 퍼)에 수록된 곡,
楓(Kaede, 카에데)를 듣고 있으니..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 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 
フェイクファ― |

冷情と熱情のあいだ | 헤어짐의 대상이 가족이었든 연인이었든 그 아픔의 질량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않게 무겁고 크지만
갑작스런 사고가 아니라면 가족과의 헤어짐은 세월을 지나면서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기에
비록 헤어짐 당시에는 비탄에 빠질지라도 결국 그 헤어짐을 인생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성에게 빠져드는 사랑, 특히 젊은 날 열정 끝의 슬픈 결말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합니다.
살아가다보면 일생에 적어도 한번 이상은 지독한 사랑에 빠져듭니다.
열정 건너편에는 냉정이 숨죽여 기다리듯, 사랑 그 주위에는 헤어짐을 예감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지만
지독한 사랑의 당사자들은 그것들을 보지못한 채 또는 외면한 채 그 열정이 영원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영원할 것 같았던 열정이 누군가의 가슴에서 사그러들고
누군가의 곁에 있던 사람은 뒤늦게사 그걸 깨닫지만 헤어짐의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
그런 헤어짐을 겪은 적이 있는 친구가 세월이 한참 지난 뒤 그 견디기 힘들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이런 이야기 하더군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있던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마치 자신 만이 그 세계에서 갑자기 사라진 듯 했다. .. |
술과 커피만 마셔질 뿐 음식은 몸이 받아들이지도 않고 불면의 밤에 시달리며 마음은 아리다못해 찢어집니다.
어느 친구처럼,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있던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마치 자신 만이 그 세계에서 갑자기 사라진 듯 합니다.
또는 자신만을 홀로 남겨버린 채 자신의 둘러싼 세계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 합니다.
끝이 없을 듯 했던 열정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못한 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냅니다.
'분명 다시 돌아오리라'는 바램은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를 위한 위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되고
결국 그런 헛된 바램에 기대어 간신히 버텨오던 자신에 대하여 더욱 절망하지만. ..
그래도 '분명 다시 돌아오리라'는 헛된 바램을, 한동안 또는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합니다. |

楓 | 1998년 7월 7일 스핏츠의 19번째 싱글로 발매되기도 한 楓(Kaede, 카에데).
그 중반부를 지나 간주가 나오기 전, 쿠사노 마사무네(草野マサムネ)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呼び合う名前がこだまし始める
서로 부르는 이름이 메아리치기 시작하네
聴こえる?
들리니? |
● 楓 노랫말 살펴보기 |
이별의 노래 楓에서 제가 가장 가슴 저린 부분은 바로 이 부분 '들리니?(聴こえる?)'입니다.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헛된 바램에서 '서로 부르는 이름(呼び合う名前)'이라고 애써 노래하지만
사실은 '혼자 불러보는 이름'일 뿐이며 '메아리(こだま)'되어 돌아오는 것 또한 자신의 목소리일 뿐이지요.
그리고 떠난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다시 돌아오리라는 헛된 바램이 담긴 한마디 '들리니?(聴こえる?)' ..
결국은 떠난 사람에게는 들리지않을 '혼자 불러보는 이름'이자 공허한 '메아리(こだま)'인 것을 알면서도
혼잣말처럼 되뇌일 수 밖에 없는 한마디 '들리니?(聴こえる?)'가 ... 제 가슴을 저리게 만듭니다. |
그리고 쿠사노 마사무네는 후렴부에서 4번에 걸쳐 이렇게 탄식합니다.
ああ 僕のままで どこまで屆くだろう
아아 나인채로 어디까지 닿을 것인가 |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바램 속의 '지난 사랑'을 한동안 또는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별을 받아들인 채 '너의 목소리를 안고서 걸어가고(君の声を 抱いて步いて)'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이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누군가 상처를 입히더라도(これから傷ついたり 誰か 傷つけても)' ....
이제는 더이상.. 헤어짐이라는 상처를 받기 이전의 '나인채로(僕のままで)'일 수 없음을 탄식하는 것이겠지요. |
사람들은 이렇게 위로합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 새로운 사랑이 나타날테니 빨리 잊으라'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열정은 지난날의 상처를 어루만져 흉터조차 남기지않게 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 '언젠가'의 날이 올 때까지 겪어야하는 절망은 어떡하나요?
더구나 헤어짐이란 상처를 입게됨에 따라, 사랑이란 단어를 마주할 때 가졌던 '감정의 순수함' 조차 잃어버렸다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해도.. '새로운 열정'을 못내 주저하게되면 어떡하나요?
楓를 들으며 사랑, 열정, 냉정, 헤어짐 등을 생각하니 한 시인의 애절한 시 한편을 나즈막히 되뇌어보게 됩니다. |

야트막한 사랑 | 사랑을 위한 각서 12
나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 말했던가
칸나꽃 붉게 폈던 여름이었나
그대 왼손을 들어 헝클어진 머리칼 올려
땀을 닦던 유리창 곁이었나
나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 말했던가
세월이 흘러 너와 나의 얼굴엔
시간이 숨쉬고 간 그늘만 아득하고
그때 서로에게 기댄 이야기가 가늘고 긴
주름으로 기울었는데
나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 말했던가
우부룩한 잡풀더미 속
칸나꽃 붉게 피어 우르르 밀려와
저기서 문득 멎었는데
- 강형철의 시집 야트막한 사랑 中에서 |
칸나꽃 붉게 피어 우르르 밀려와
저기서 문득 멎었는데 .... | .... 聴こえる?
.... 들리니? |
스핏츠의 노래 중에 그런 경우가 여럿 있듯, 이 곡 역시 노래 제목을 노랫말 안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노래 제목 楓를 우리말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약간 난감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楓」는 '단풍나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고, 싱글 재킷에도 단풍잎 한장이 그려져 있고
아울러 이 노래가 楓라는 최종적인 제목이 붙여지기 전,
'단풍나무'라는 의미의 영어 Maple을 뜻하는 メイプル(Maple, 메이플)이라는 가제를 가진 적도 있기에
楓를 '단풍나무'라고 해석하면 가장 무난할 듯 하긴 하지만,
노랫말 그 어디에도 '단풍나무'라는 의미로 楓가 나오지않는다는 점, (아니, 아예「楓」란 단어가 없지요.)
그리고 이 노래가 실연을 주제로 하고있다는 점, 일본에서 楓(かえで)가 인명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본다면, 楓를 '단풍나무'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그저 '카에데'라고 하고 싶습니다. |
1999년 일본에서 방영된 TV 드라마 오버 타임(オ―バ―·タイム, Over Time)에서
이 곡이 삽입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그 장면에서 이 노래 楓(Kaede, 카에데)의 제목을 언급하는 다이얼로그를 통하여
주인공의 이름 즉, 카에데 소우이치로(楓宗一郎, かえでそういちろう)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MR.CHILDREN의 くるみ(Kurumi)도 '호두나무'라고 사전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来る未来(くるみらい, 다가올 미래)라는 의미를 담은 인명 くるみ로 봐서, 우리말로 그냥 '쿠루미'라고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듯
楓를 '굳이 단풍나무'라고 하기보다는 '카에데'라고 함으로써
'단풍나무적인 느낌(?)'과 '카에데라고 불리우는 누군가와의 사랑 그리고 실연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 중의적인 - 표현의 해석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지요. |
스핏츠의 곡 중에서 楓는 최종적인 제목에 정해지기 전 가장 많은 가제가 붙었던 곡입니다.
楓(Kaede, 카에데)의 히라가나(ひらがな) 문자 표기인 かえで(Kaede, 카에데)이기도 했고
앞서 얘기했듯이 'メイプル(Maple, 메이플)'이라는 가제가 붙여지기도 했으며
呼び合う名前がこだまし始める
서로 부르는 이름이 메아리 치기 시작하네 | 위에 인용한 노랫말 안의 단어 'こだま(Kodama, 메아리)'를 가제로 삼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한편 'アコ―スティック(Acoustic, 어쿠스틱)'이라는 가제가 붙여지기도 했다는데,
아마도 이 곡 楓가 풍겨주는 어쿠스틱한 분위기를 고려한 듯 합니다.
그리고 1998년 7월 싱글 발매와 함께 楓는 TBS의 'COUNTDOWN TV'의 오프닝 테마로 사용되었고
역시 앞서 언급했듯이 오버 타임(オ―バ―·タイム, Over Time)에서 삽입곡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 
楓 |

Fender PS210 | 혹시 콘써트 또는 뮤직비디오 클립 등의 동영상을 통하여
- 특히 하와이언 분위기의 음악 또는 컨트리&웨스턴(Country & Western) 분위기의 음악에서 -
마치 가야금처럼 기타를 눕혀서 연주하는 것을 본 적 있다면,
그런 기타가 바로 페달 스틸 기타(Pedal Steel Guitar) 또는 랩 스틸 기타(Lap Steel Guitar)입니다.
왼쪽의 이미지는 펜더(Fender)사의 페달 스틸 기타 제품 중 하나로서 PS-210이라는 모델인데
랩 스틸 기타의 경우는 페달이 없이 일반적인 기타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楓에서는 스핏츠의 기타리스트인 미와 테츠야(三輪テツヤ)가 들려주는 기타 사운드 말고도
타무라 겐이치(田村玄一)의 페달 스틸 기타 사운드를 들을 수 있습니다. |
메트로화스(メトロファルス, Metrofarce)라는 밴드에 1991년부터 합류하여 활동 중인 그는,
스핏츠를 포함하여 수많은 뮤지션들의 음반작업에 참여하여
스틸 팬(Steel Pan)이라는 독특한 멜로디 타악기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고
하와이언 랩 스틸 기타의 일종인 바이센보른(Weissenborn)을 비롯하여 랩 스틸, 페달 스틸은 물론
(모양새가 마치 장난감같이 보이는) 우쿠렐레(Ukulele) 연주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타 연주를 통해
흔치않은 하와이언 기타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타무라 겐이치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오른족에 있는 그의 이미지를 클릭하여
メトロファルス 오피셜 싸이트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 
田村玄一 CLICK .. ↑ |
√ 楓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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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9/12 16:38 | 스핏츠/SINGLE | trackback (0) | reply (36) |
Tags : Sp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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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타임,
타무라 겐이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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