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지난 5월 말 자전거 사러 같이 가자는 친구를 따라 나섰다가 나도 그만 덜컥 사버렸다.
평소에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있는데도 말이다.
다이아몬드 형 프레임의 화이트 색상과 바퀴의 림을 둘러싼 라임 그린의 조화가 예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돈을 빌려주면서까지 부추기는 친구의 꼬드김이 결정타였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스타일의 새 자전거가 생겼다. 알톤 탑런 2013. |  |
그리고 이틀 뒤 일요일에 그 친구와 둘이서 새 자전거를 타고 양평 쪽으로 달렸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근처까지는 몇차례 달린 적이 있지만
양평 군립 미술관을 지나 펼쳐지는 남한강 자전거도로을 달려보기는 그날이 처음이었는데
서울권역의 한강과 달리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호젓함을 만끽하는 라이딩이었다.
새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 그리고 자전거에 빠져버린 친구의 새로운 면모를 바라보는 흐뭇함.
그것에 기분 좋아진 주말이었는데 새로운 주가 시작되자 정반대의 아쉬움이 밀려왔다.
새 자전거를 사느라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아주고자 원래 있던 자전거를 팔려고 하니
4년 7개월 동안 함께 했던 20인치짜리 작은 바퀴의 자전거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 |  |
쓰던 물건에 대한 애착.
언젠가부터 되도록이면 그런 마음을 내려놓자고 마음먹었고 또 그러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논객을 좋아하는 녀석에게는 그 논객의 초창기 저서 초판본을,
그리고 얼마 전 사랑과 평화 공연을 보러 간다길래 사랑과 평화 1, 2, 3집 LP 3장도 줬다.
만화를 즐기는 어느 친구에게는 만화책을, 회사 일에 몰두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는 소설책을,
그것을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면 묵혀두느니 그들에게 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애착'으로 말하자면 주로 책이나 CD, LP 등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저 '탈 것'으로만 여기던 자전거는 아예 애착의 고려 대상조차 아닌데··· 그렇지 않았나보다.
어쩌면 책이나 음반보다 더 감정이입이 된 물건이었던 것 같다.
··· 견뎌내기가 무척 힘든 일이 있으면 그리고 그것이 내가 어떡할 방법이 없는 일인 경우
그래서 정신적으로 힘들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나는 육체를 혹사시킨다.
몸의 고통을 극대화시켜서 마음의 아픔 따위는 아예 가슴 속에서 지워질 수 밖에 없도록 하는 방법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애당초의 고민이 사라지거나 해결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게 육체를 혹사시키고 나면 당초의 고민,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더 관조적이 된다고 할까.
어떤 면에서 보면 결국 패배적이거나 자포자기하는 태도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릴 들을 수도 있지만
어쩌랴, 어떡해도 이겨낼 수 없는 정신의 문제라면 완전히 망가지는 것보다는 나은 것일테니.··· |  |
지난해 이맘때 쯤 여기에 썼던 어느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마음의 고민을 해소하는데 썼던 이 방법의 도구가 되어준 것이 바로 그 20인치짜리 작은 바퀴의 자전거였다.
한강, 탄천, 양재천, 안양천을 따라 과천, 안양까지 걸쳐 있는 이른바 '하트 코스'와
아라뱃길을 따라 영종대교가 코앞에 보이는 서해 바다까지의 왕복을 함께 했던 미니벨로 스프린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터질 듯한 페달링으로 그 당시의 어떤 고민들을 덮어버렸던 순간들이
체인 하나하나마다 촘촘히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연두색 메리다 로미오.
ⅱ
● 노랫말, 열기
リコリス(Licorice, 리코리스)
작사·작곡 ∶ 쿠사노 마사무네(草野正宗)
おもしろく哀しい 旅人の話 めくる頁の先に
いきなり現れ 外した口笛 その笑顔はリコリス味
재미있고 슬픈 나그네의 이야기 넘기는 페이지의 끝에
갑자기 나타나서 음정 틀린 휘파람 그 웃는 얼굴은 리코리스 맛
ねむたい目をしてさ 君は風の中
乾いてあれてる指で
졸린 눈을 하고서 너는 바람 속
마르고 거칠어진 손가락으로
触れ合うことからはじめる 輝く何かを追いかける
서로 만지는 것부터 시작하네 눈부시게 빛나는 무언가를 뒤쫓아가네
よくできた機械 まじないの後に 冷たいラムネを飲み干す
となりの町まで 裏道を歩け 夕暮れにはまだあるから
잘 만들어진 기계 주문을 왼 후에 차가운 라무네를 다 마셔버리네
옆 동네까지 골목길을 걸어라 해 질 녘까지는 아직 남았으니까
つまらないことなのに 言いだせないまま
煙と消え去る前に
재미없는 건데도 말을 꺼낼 수 없는 채
연기와 사라져 버리기 전에
触れ合うことからはじめる 輝く何かを追いかける
서로 만지는 것부터 시작하네 눈부시게 빛나는 무언가를 뒤쫓아가네
煙と消え去る前に
연기와 사라져 버리기 전에
触れ合うことからはじめる 輝く何かを追いかける
触れ合うことからはじめる 輝く何かを追いかける
서로 만지는 것부터 시작하네 눈부시게 빛나는 무언가를 뒤쫓아가네
서로 만지는 것부터 시작하네 눈부시게 빛나는 무언가를 뒤쫓아가네 | 
2004-11-10
正夢

2012-02-01
おるた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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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자전거를 타면 한강 자전거길로 들어선 다음 잠시 멈추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사고 위험이 있으니 볼륨은 낮추고 또 때로는 한쪽 귀에만 꽂은 채 달린다.
페달을 힘껏 밟아 제법 가속을 붙이거나 내리막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커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작은 음악 소리를 덮어버리기 시작한다.
거기다 주위의 생활 소음까지 겹쳐지면 이어폰의 음악은 메인 멜로디 정도만 남는다.
자전거 탈 때 가지고 다니는 조그만 아이팟은 모드를 임의 재생으로 맞추어 두는데
요즘 들어서는 스핏츠(スピッツ)의 음악 전부를 넣고 다니면서 랜덤 플레이를 즐긴다.
스핏츠는 어떤 노래든 다 좋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릴 떄 특히 더 좋은 노래들이 있다.
リコリス(Licorice, 리코리스) 같은 노래도 그런 노래들 중 하나다. |  |
이를테면 이런 구간들에서 말이다.
한강의 동호대교 북단에서 구리 방향으로 중랑천 합류부까지 가는 자전거길에는 있는,
언뜻 보기에는 약간의 오르막 같지만 페달을 조금만 밟아줘도 가속이 제대로 붙는 구간.
또는 두물머리에서 남한강 줄기를 따라 달리다가 저멀리 이포보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거기서부터 이포보에 다다를 때까지 누구나 허벅지에 힘을 주기 시작하는 직선 구간.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합류부 또는 그 옆 서울숲에서 잠시 쉴 생각이 있다든지
팔당역을 기점으로 달리기 시작해서 이포보 정도를 그날 라이딩의 반환점으로 정했다든지 한다면
그러한 체크 포인트를 앞두고는 저도 몰래 피치를 올리게 마련이다.
그 순간 때마침 스핏츠의 이 노래 후렴부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온다면
그것은 일종의 주문(呪文, spell)으로 변하여 그 포인트에 도착할 때까지 머릿속에서 무한반복 된다.
触れ合うことからはじめる 輝く何かを追いかける
서로 만지는 것부터 시작하네 눈부시게 빛나는 무언가를 뒤쫓아가네 |
이 후렴부를 이루는 25개의 음절은 특이하게도 모두 같은 높이의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런 식의 음 배열 덕분인지 자전거를 탈 때 들으면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지쳤겠지만 조금만 더 페달을 밟아봐!" 라고. |  |
ⅲ
새 자전거를 사고 나서 페이스북에서 자전거 이야기를 꺼냈더니
페이스북 친구 중 하나가 미니벨로 스프린터에 관심을 보이길래
굳이 인터넷에 중고 상품으로 올릴 필요없이 그에게 바로 넘기기로 했다.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그의 키에 맞춰 안장을 높게 세운 사진이 올라왔다.
낯설음과 아쉬움이 함께 다가왔다.
장만한 지 한달 남짓 되는 나의 새 자전거는 오늘 현재 누적 주행거리는 470km.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380km 정도 되니까 주행거리로 하면
어느새 고작 한달 만에 부산까지 갔다가 방향을 바꿔서 경주 쯤까지 달린 셈이다.
이제 내 손을 떠났지만 나는 메리다 로미오의 페달을 얼마나 밟았던 걸까.
주행 기록을 남겨두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서울 부산 왕복을 몇 차례는 한 셈이겠지.
안녕, 메리다 로미오. |  |
ⅳ
● 스핏츠 팬을 위한 덧붙임, 열기
'리코리스'는 감초(甘草)의 일종인 약용 식물이라고 하는데
검색해보면 우리가 흔히 '쫀드기'라고 부르는 옛날과자와 같은 이미지도 꽤 나온다.
쿠사노 마사무네가 이 노래를 만들 때 떠올렸던 '리코리스'는 무엇일까.
일본어로 검색했을 때의 이미지는 거의 대부분 약용 식물인 리코리스의 꽃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막연한 나의 상상으로는 이상야릇한 맛의 '쫀드기'인 리코리스인 듯하다.
즉, 이절에 나오는 '라무네'와 함께 '어린 시절의 맛'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
'라무네'는 레모네이드에서 비롯된 이름의 음료수인데
레몬 맛이 나는 탄산 음료로 요즘은 주로 관광지 등에서만 볼 수 있는 듯하다.
에노시마(江の島)에 갔을 때 사먹어 본 적이 있는데 병의 구조가 상당히 재미있다.
탄산가스의 빠지는 것을 막는 유리구슬이 병 안에서 마개 역할을 하는데
유리구슬을 밀어 내리면 음료 안으로 구슬이 빠지면서 병이 따진다.
한편 마실 때는 그 유리구슬이 음료가 한꺼번에 많이 나오지 읺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노래 전반에 걸쳐서 백그라운드로 깔리는 오르간 사운드,
하몬드 B-3을 연주해주는 뮤지션은 스핏츠의 공연 서포터 쿠지 히로코(クジヒロコ),
앞서 언급한 '주문과 같은 후렴부'에서 백업하는 프렌치 혼을 연주하는 뮤지션은
클래식을 전공한 레코딩 아티스트 후지타 오토히코(藤田乙比古)라고 한다. |  |
쿠지 히로코는 스핏츠의 '다섯번째 멤버'라는 말도 있을 만큼 팬들에게 유명한 건반 연주자이고
다른 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어서 여기서는 생략한다.
후지타 오토히코는 낯설 수도 있는데, 오래 전에 스핏츠와의 인연을 맺은 바 있는 뮤지션이다.
스핏츠의 세번째 싱글인 魔女旅に出る(Majo Tabi ni Deru, 마녀 여행을 떠나다),
간주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인상적인 명곡인데 그 부분을 들어보면
스트링 섹션에 이어서 웅장하게 펼쳐지는 혼 섹션에서 트롬본과 함께 프렌치 혼이 연주된다.
그 프렌치 혼을 연주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후지타 오토히코다.
1991년의 3번째 싱글에서 처음 만나 2004년의 29번째 싱글에서 다시 만났으니
후지타 오토히코와 스핏츠는 무려 13년만에 재회한 셈이다.
참고로 1991년의 부클릿에는 '후지타 유키히코(藤田之比古)'라고 잘못 표기되었는데
2004년의 부클릿에는 이름이 '후지타 오토히코(藤田乙比古)'라고 바로 표기되어 있다. | 
藤田乙比古 |
√ リコリス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스트리밍되고 있는 음악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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