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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기다렸던 꿈의 언저리 待ちぶせた夢のほとり |
ⅰ
만나자마자 순대국밥집에 자리잡고 뜨끈한 국물과 순대로 배를 채우기 시작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옮긴 자리가 '별다방'이나 '콩다방'과 달리 흡연이 자유스러운 커피숍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글쓰기' 또는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문학'이라는 것은 일상적으로 거론되는 주제가 분명 아닌데도
그날 저녁 그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마치 TV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잡담처럼 자연스러웠다.
'글쓰기'라는 진지한 주제를 두고 나누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해주는 배경으로
순대국밥과 자유로운 흡연이라고 짐작하는 것도 사실 조금 웃기지만, 아무튼 그랬다. | 
1995-04-05
ロビンソン |
밥벌이에 쫓기는 와중에도 소설가를 꿈꾸며 짬이 나는 대로 습작을 하고 있는 그는
요즈음 새로운 단편을 구상 중이라고 했는데 '사과와 용서'가 중심 테마라고 했다.
줄거리는 이렇고 결말은 저렇게 가려고 한다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의견을 물었다.
이때껏 전문적인 관심을 가지고 '문학'이란 것을 마주해본 적이 전혀 없고
한가한 주말 오후에 어쩌다 재미로 소설책을 펴들어 보는 수준의 나로서는
아직 습작 단계이긴 해도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그에게
어떤 의견을 낸다는 게 말이 안되는데도 두서없이 서투르고 어설픈 의견을 말했다.
마침 순대국밥을 먹은 그 동네가 내가 사 년 동안 다녔던 대학교 앞이었기에
딴에는 소설책 같은 것을 기초 교양으로라도 읽어대던 시절이 떠오르기까지 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에게 드러내진 않았지만 약간 달뜬 느낌이랄까 그런 기분도 슬그머니 들었으니까. | 
1995-09-20
ハチミツ |
그가 구상하고 있는 단편에서의 구체적인 것들,
이를테면 등장 인물의 심리가 어떤 기승전결을 통해서 변화가 이루어지는지
다소 엉뚱하다 싶은 전개를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라든지 그런 것 말고도
'글쓰기'는 결국 '자기 현시 욕구의 한 모습'이라는 당연한 명제까지 몇 차례 언급되는 동안
재떨이에는 다른 테이블의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은 갯수의 꽁초가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얘기 앞뒤로 괜찮은 순대국밥집이 있으니 언제 한번 같이 가자는 말을 건넸고
그는 사이사이 그의 동생, 애인 그리고 회사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회사에서 그가 맡고 있는 업무인 머천다이징 그리고 그 업무 분장에 대해서도 잠깐 얘기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의 단편 하나를 말하고 싶었다.
소설집 『도시여행자』에 수록된 단편 『캔슬된 거리의 안내(キャンセルされた街の案内)』.
왠지 그 자리에서 거론되던 여러 가지 것들을 다시 떠올릴 만한 소설이라는 생각에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었는데 말을 못하고 말았다.
이미 시간이 꽤 흘러서 자칫하면 귀가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아서였다. | 
1999-12-15
RECYCLE
Greatest Hits of SPITZ |
내가 쓰는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깃코는 역 반대편에 살고, 반년 전에 헤어진 후로도 주말이면 뻔뻔스럽게 그 집으로 놀러 갔다. 소설에 쓴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다만 이 소설에는 쓰지 않은 일이 더 많다. 포도 따기라도 하듯 나는 지금껏 흠집 없이 잘 익은 송이만 따왔다. 그렇다면 쓰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완전하지 않다.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쓰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거짓인 셈이다. 내가 하는 일은 완전히 현실에서 몇 송이만을 따내어 거짓으로 내일에 남기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
이쯤에서 나는 정신없이 휘갈겨 써내려가던 원고지를 집어던졌다. 모든 게 쓰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소설이 거짓이 된다면, 거기에 거짓을 좀 덧붙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시 원고지를 집어 들고 마지막 장만 찢어내고 뜨거워진 펜을 고쳐 잡았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캔슬된 거리의 안내』 중에서. | 
도시여행자 |
ⅱ
앞서 이야기한 것과는 무관하지만 그날 그는 스핏츠(スピッ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 역시 나처럼 스핏츠 팬인데 '팬질'에 있어서는 여러 면에서 나보다 훨씬 윗길이다)
어느 날 '큐슈센닌(九州鮮人)'이라는 식당에서 회사 직원들과 회식을 했는데
거기서 스핏츠의 명곡 ロビンソン(Robinson, 로빈슨)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무심결에 '정신줄'을 놓는 바람에 회사 상급자에게 살짝 핀잔을 들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 회식 자리에서 스핏츠를 알 만한 사람은 그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근무 시간이 아니니까 업무와 무관한 화제를 꺼낼 수도 있지만
하다못해 거래처 담당자에 대한 험담이라든지 공통 분모가 있는 화제가 되어야 하는데
그 회사 머천다이징 업무의 대상이지도 않은 스핏츠였으니, 어쩌면 그럴 만도 하다. | 
2006-03-25
CYCLE HIT 1991-1997 |
ロビンソン ∼ スピッツ
新しい季節は なぜかせつない日々で
河原の道を自転車で 走る君を追いかけた
思い出のレコードと 大げさなエピソードを
疲れた肩にぶらさげて しかめつら まぶしそうに
同じセリフ 同じ時 思わず口にするような
ありふれたこの魔法で つくり上げたよ
誰も触われない 二人だけの国 君の手を離さぬように
大きな力で 空に浮かべたら ルララ 宇宙の風に乗る
片隅に捨てられて 呼吸をやめない猫も
どこか似ている 抱き上げて 無理やりに 頬よせるよ
いつもの交差点で 見上げた丸い窓は
うす汚れてる ぎりぎりの三日月も僕を見てた
待ちぶせた夢のほとり 驚いた君の瞳
そして僕ら今ここで 生まれ変わるよ
誰も触われない 二人だけの国 終わらない歌ばらまいて
大きな力で 空に浮かべたら ルララ 宇宙の風に乗る
大きな力で 空に浮かべたら ルララ 宇宙の風に乗る
ルララ 宇宙の風に乘る
作詞・作曲 ∶ 草野正宗 | 로빈슨 ∼ 스핏츠
새로운 계절은 어쩐지 힘든 날들인데
강가 자갈밭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너를 뒤쫓아갔다
추억의 레코드와 과장된 에피소드를
지친 어깨에 늘어뜨리고 찡그린 얼굴 눈부신 듯이
같은 말 같은 시간 무심코 말할 것 같은
흔하게 있는 이 마법으로 만들어 냈지
아무도 만질 수 없는 둘만의 나라 너의 손을 놓지 않도록
커다란 힘으로 하늘에 떠올리면 루랄라 우주의 바람을 탄다
한구석에 버려져 호흡을 멈추지 않는 고양이도
어딘지 닮았다 안아 올려서 억지로 뺨 가까이 댄다
평소와 같은 건널목에서 올려다본 둥근 창은
조금 더러워져 있다 사라질 듯한 초승달도 나를 보고 있었다
숨어서 기다렸던 꿈의 언저리 놀랐던 너의 눈동자
그리고 우리들 지금 여기서 새롭게 태어나지
아무도 만질 수 없는 둘만의 나라 끝나지 않는 노래 흩뿌리고
커다란 힘으로 하늘에 떠올리면 루랄라 우주의 바람을 탄다
커다란 힘으로 하늘에 떠올리면 루랄라 우주의 바람을 탄다
루랄라 우주의 바람을 탄다
작사·작곡 ∶ 쿠사노 마사무네 |
● ロビンソン 노랫말 (후리가나 표기) 살펴보기
ⅲ
제대로 된 플롯이 있고 군더더기가 없는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밖에야,
일상의 대화에서는 그날의 주된 이야기와 그다지 상관없는 말도 오간다.
그날도 그랬는데 그는 자신의 이야기만 계속 하기가 조금 그랬는지 문득 내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직도 내게 꿈이 있느냐는 요지의 질문이었는데 딱히 뭐라고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했다.
지금 곰곰히 다시 생각해봐도 이제 와서 내게 무슨 특별한 꿈 같은 게 있으랴 싶으니까.
그날 그가 그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는 다소 부끄러워 하는 표정을 보였으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쑥쓰러워하는 기색은 사라지고 때로는 목소리가 다소 커지기도 했다.
나와 달리 그는 꿈이 있고 또 그 꿈을 향한 열정도 상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소설가를 꿈꾸는 그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ロビンソン(Robinson, 로빈슨)을 듣고 있다.
그가 자신이 꿈꾸는 소설가가 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가 '숨어서 기다렸던 꿈의 언저리(待ちぶせた夢のほとり)' 정도까지는 접근했는지도 모른다.
그쪽 분야와는 무관한 나 같은 사람에게 자신의 꿈을 드러낸 것을 보면 말이다. |  |
그의 사정 상 여러모로 힘들기도 하고 또 꽤 오랫동안 갈고 닦아야 하겠지만···
정진해서 꿈을 꼭 이루기 바란다.
그래서 (지금 듣고 있는 스핏츠의 노랫말을 빌려서 말하자면)
자신만이 갖고 있는 '추억의 레코드(思い出のレコード)'를 상상력으로 녹여
다시 만들어 낼 '과장된 에피소드(大げさなエピソード)'.
즉, 그의 소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주는 날이 언젠가 분명히 오기를 기대한다.
√음악 파일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부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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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18 16:34 | 스핏츠/SINGLE | trackback (0) | reply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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