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 심보선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앞의 시인처럼 (화분에 물을 주기까진 하지 않았지만) 음악을 고르고 커피를 마시고 시집을 뒤적이는 주말.
지금은 스핏츠(スピッツ)의 노래 하나를 반복해서 들으며 심보선의 『삼십대』를 다시 눈으로 천천히 읽는다.
ガーベラ(Gerbera, 거베라).
2001년 12월 12일 발매된 스핏츠의 25번째 싱글인
さわって・変わって(Sawatte Kawatte, 만져줘 변할 거야)의 커플링 곡 중 하나.
2002년 9월 11일 발매된 스핏츠의 10번째 정규 앨범인
三日月ロック(Mikazuki Rock,초승달 록)의 11번째 트랙으로도 수록된 곡.
2001년 7월 이후 지금까지 스핏츠의 정규 음반 프로듀싱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는 사람은
카메다 세이지(亀田誠治)라는 유명 프로듀서인데,
스핏츠의 멤버들은 이 곡 ガーベラ(Gerbera, 거베라)를 두고
"카메다 세이지와의 첫 세션으로 추억이 깊은 곡"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さわって・変わって |
이 곡의 기타 연주에 대해서 언급할 부분 하나.
일절과 이절까지의 기타 연주는 아르페지오로 연주되다가
간주 부분부터는 기타리스트 미와 테츠야(三輪テツヤ)의 색다른 주법이 추가된다.
이보우(e-bow)라는 기타 관련 장비를 이용한 연주 기법이 그것인데
'보우(bow)' 즉 '활'이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활로 현을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 등과 같은 현악기가 연상되는 기법이다.
이보우를 이용한 기타 연주에 대해서는 아레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 필 케이기(Phil Keaggy)의 이보우 설명 및 Amazing Grace 연주 |  |
노랫말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생명에 기대어(命に甘えて)'라는 표현이다.
'(사양하지 않고) 상대편의 호의에 기대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아마에루(甘える)」는
(또 다른 뜻으로 '응석부리다' 또는 '어리광부리다' 라는 의미도 있다)
'말씀을 고맙게 받아들여서' 또는 '말씀이 계셨으니 사양치 않고' 라는 의미의 관용 표현,
즉 「お言葉に甘えまして」라는 표현에도 사용된다고 사전에 나와 있다.
혹시 쿠사노 마사무네(草野正宗)는 이 곡을 쓸 때 이 관용 표현을 잠시 떠올린 것은 아닐까.
'말씀(お言葉)' 대신에 '생명(お命)'을 대입하고
앞서의 우리말 의미에서 '말씀'을 '생명'으로 바꿔본다.
お命に甘えまして
생명을 고맙게 받아들여서
생명이 있으니 사양치 않고
너와 '이어지고 있다(繋がってる)'는 느낌.
그 느낌은 '생명에 기대어(命に甘えて)' 있다는 믿음.
목숨을 걸고서라도 너에게 닿고 싶고
이 목숨 다할 때까지 너와 이어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 
三日月ロック |
'덧붙임'이라고 해놓고 (또) 너무 길어졌다.
그래서, ガーベラ(Gerbera, 거베라)에 대한 세줄 요약으로 끝.
밖으로 위로 퍼져나가는 듯한 사운드.
가운데로 바닥으로 침잠하는 듯한 노랫말.
말하자면, 멜랑꼴리 또는 센티멘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