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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이상 나아갈 수 없어도, 행복해지자 もうこれ以上進めなくても、幸せになろうよ |
ⅰ
인생을 한번 더 살 수 있다면, 아마도 이모는 정방동 136-2번지, 그 함석지붕집을 찾아가겠지. 미래가 없는 두 연인이 3개월 동안 살던 집. 말했다시피 그 집에서 살 때 뭐가 그리 좋았냐니까 빗소리가 좋았다고 이모는 대답했다. 자기들이 세를 얻어 들어가던 사월에는 미였다가 칠월에는 솔까지 올라갔다던 그 빗소리. 그날 저녁, '정감독'을 만나기 위해 서귀포로 나가는 길에 이모와 그 집에 들렀다. 이모는 지붕을 고치고 증축하긴 했지만, 원래 그 집의 형태가 바뀐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그 얇은 함석지붕이 컬러 강판으로 바뀐 것만은 아쉽다고 이모가 말했다. 하지만 지구를 반 바퀴나 돌면서 반생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이모에게는 그 집이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과도 같았다. 이모에게 그게 진짜냐고, 빗소리가 정말로 사월에는 미 정도였다가 칠월에는 솔까지 올라갔느냐고 물어보자, 이모는 얼굴을 조금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다고, 정말 빗소리가 달라졌다고 대답했다. 그뒤로 이모는 한 번도 그런 빗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매일 밤, 밤새 정감독의 팔을 베고 누워서는 혹시 날이 밝으면 이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자다가 깨고, 또 자다가 깨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러다가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또 움직이면 그가 깰까봐 꼼짝도 못하고 듣던, 그 빗소리 말이다. 바로 어제 내린 비처럼 아직도 생생한, 하지만 이제는 영영 다시 들을 수 없는 그 빗소리.
∼ 김연수의 단편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중에서.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설날 연휴 마지막 날, 소설책을 펴들고 단편소설 한 편을 읽었다.
소설의 배경이 제주도인데다가 그곳의 특정 지번까지 나오길래 컴퓨터를 켜고 로드뷰를 살펴봤다.
제주도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
지도 검색을 하기 전에는 아마 없는 지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검색이 되는 곳이고
로드뷰를 펼치니 전답이나 임야가 아니라 '소설처럼' 집이 들어서 있어서 약간 의외였다.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저 집의 거주자에게 소설가는 양해를 구했을까,
아니면 소설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집일까 하는 호기심도 곧바로 생겨났다.
아무튼.
미래가 없는 두 연인이 3개월 동안 살던 집.
사월에는 미였다가 칠월에는 솔까지 올라갔다던 그 빗소리.
바로 어제 내린 비처럼 아직도 생생한, 하지만 이제는 영영 다시 들을 수 없는 그 빗소리.
···
限りある未来を 搾り取る日々から
脱け出そうと誘った 君の目に映る海 | 한계가 있는 미래를 짜내는 날들로부터
살짝 도망치자 라며 유혹했던 너의 눈에 비치는 바다 |
···
로드뷰에서는 소설을 통해 내 머릿속에 상상으로 각인된 이미지와는 다른 풍경이 나왔다.
빗소리를 들려줬던 함석지붕은 이미 소설 속에서도 사라져 버렸으니
미에서 솔로 음정이 달라지는 빗소리가 녹아 들어가 있는, 내 상상 속의 이미지는
로드뷰에 나오는 파란색 지붕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  |
ⅱ
다들 그렇듯 요즘은 나 역시 SNS를 통하여 주위 사람들의 일상을 알게 되기도 한다.
한 친구가 이번 연휴 기간 중에 미국으로 출장가 있다는 것도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고
또 다른 친구가 제주도에서 연휴를 만끽하고 있는 사진을 보는 것은 어느 폐쇄형 SNS에서다.
마침 책을 덮은 참이라 약간의 시차를 두면서 올라오는 사진과 짧은 캡션을 모바일로 보다가
협재해변·산방산·숙소에서의 아침 식사·아쿠아리움·넥슨컴퓨터박물관 등의 사진에 이어
해변에 있는 카페의 창 너머 풍경 사진을 보고는 자리를 옮겨 노트북을 열었다.
서귀포·성산일출봉·섭지코지·제주올레···
검색창에 몇몇 단어를 입력하자 노트북의 화면에 남제주의 풍경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남제주에 있는 어느 카페의 블로그에 잠시 둘러보았다.
거기엔 비바람에 풍경(風磬)이 흔들리는 모습의 사진이 하나 있었는데
사진 아래에 이렇게 써있었다. |  |
비오는 이런 날엔.
여행 망쳤다고 생각하지마세요
비오는 날도. 여행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제주도로. 마음 놓으러. 마음 담으러. 버렸던 마음 주우러 오신 모든 분들.
여행. 행복하게 하셔요.
왠지 이 카페에 가면
(이왕이면 바로 옆에 맞닿아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숙박까지 한다면)
잎서의 로드뷰에서는 감지할 수 없었던 이미지를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월에는 미였다가 칠월에는 솔까지 올라갔다던 그 빗소리"
그 멜로디와 리듬이 녹아 있는 이미지를.
지도 상으로 김연수의 소설에 나오는 장소에서 이 카페까지는
남제주 해변의 일주동로를 따라 40km 남짓이니 그리 멀지 않다.
언젠가 될런지 모르지만 꼭 한번 가고 싶다.
자전거로 제주도를 일주하는 일정에 이 카페를 체크포인트로 하면 더 좋겠다.
그래서 메모해둔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1119번지 카페 미오' |  |
ⅲ
● 스핏츠 팬을 위한 덧붙임과 노랫말, 열기
1995년 9월 20일 발매 스핏츠(スピッツ)의 통산 여섯 번째 정규 앨범,
ハチミツ(Hachimitsu, 벌꿀)의 다섯 번째 트랙.
愛のことば(Ai no Kotoba, 사랑의 말).
이 앨범의 프로듀서이자 편곡자인 사사지 마사노리(笹路正徳)는 원래 건반 연주자라서
이 앨범의 레코딩 때도 여러 건반 악기 파트를 맡아서 연주해 주고 있는데
드물게도 이 곡에서는 리듬 기타(Soulful Rhythm Guitar)를 연주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기타 사운드는
미와 테츠야(三輪テツヤ)의 연주에 사사지의 연주가 더해진 것으로
쿠사노 마사무네(草野マサムネ)는 노래만 하고 기타 연주는 하지 않는다. | 
1995-09-20
ハチミツ |
愛のことば ∼ スピッツ
限りある未来を 搾り取る日々から
脱け出そうと誘った 君の目に映る海
くだらない話で 安らげる僕らは
その愚かさこそが 何よりも宝もの
昔あった国の映画で 一度観たような道を行く
なまぬるい風に吹かれて
今 煙の中で 溶け合いながら 探しつづける愛のことば
傷つくことも なめあうことも 包みこまれる愛のことば
優しい空の色 いつも通り彼らの
青い血に染まった なんとなく薄い空
焦げくさい街の光が ペットボトルで砕け散る
違う命が揺れている
今 煙の中で 溶け合いながら 探しつづける愛のことば
もうこれ以上 進めなくても 探しつづける愛のことば
雲間からこぼれ落ちてく 神様達が見える
心の糸が切れるほど 強く抱きしめたなら
昔あった国の映画で 一度観たような道を行く
なまぬるい風に吹(ふ)かれて
今 煙の中で 溶け合いながら 探しつづける愛のことば
傷つくことも なめあうことも 包みこまれる愛のことば
溶け合いながら・・・・・・
作詞・作曲 ∶ 草野正宗 | 사랑의 말 ∼ 스핏츠
한계가 있는 미래를 짜내는 날들로부터
살짝 도망치자 라며 유혹했던 너의 눈에 비치는 바다
시시한 이야기로 편안해질 수 있는 우리는
그 바보스러움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값진 보물
옛날 있었던 나라의 영화에서 한번 본 듯한 길을 가네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와
지금 안갯속에서 서로 녹으면서 계속 찾고 있는 사랑의 말
상처를 입는 것도 서로 핥는 것도 감싸지는 사랑의 말
다정한 하늘의 색 여느 때와 같이 그들의
파란 피에 물들었던 왠지 모르게 엷은 하늘
눌은 내 나는 거리의 빛이 페트병에서 부서져 흩어지네
다른 생명이 흔들리고 있네
지금 안갯속에서 서로 녹으면서 계속 찾고 있는 사랑의 말
이제 이 이상 나아갈 수 없어도 계속 찾고 있는 사랑의 말
구름 사이로부터 넘쳐 흘러 떨어져 가는 신(神)들이 보이네
마음의 실이 끊어질 만큼 강하게 꼭 껴안았더라면
옛날 있었던 나라의 영화에서 한번 본 듯한 길을 가네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와
지금 안갯속에서 서로 녹으면서 계속 찾고 있는 사랑의 말
상처를 입는 것도 서로 핥는 것도 감싸지는 사랑의 말
서로 녹으면서······
작사·작곡 ∶ 쿠사노 마사무네 |
● 뜬금없는 사족, 열기
김연수의 소설과 제주도의 어느 카페 그리고 스핏츠의 노래라니,
이번 글을 읽고는 뜬금없는 글이라고 할 사람들이 있겠다.
그렇다. 뜬금없긴 하다.
소설의 배경이 서귀포라고 해서 또 카페의 소재지가 그 근처라고 해서
노랫말에 '너의 눈에 비치는 바다(君の目に映る海)'가 나온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카페 블로그의 다른 글 몇 편을 읽어보고 확인할 수 있었는데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여기저기 스핏츠의 노랫말을 캘리그래피로 장식해두고 있다.
그러니 이번 글이 아예 뜬금없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한다면,
억지스러울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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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문구 인용을 허락해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 愛のことば 노랫말(우리말 번역)의 출처는 (c) spitzHAUS 입니다.
√ 음악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스트리밍 될 뿐이며 일체의 상업적 목적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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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03 17:53 | 스핏츠/ALBUM | trackback (0) | reply (17) |
Tags : Sp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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